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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경제민주화, 대기업-노조 담합이 문제다

중앙일보 2012.10.23 00:32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경제민주화가 뭐예요?” 아침 식탁에서 명랑세대의 대학생 딸이 묻는다. ‘글쎄…’ 잔잔한 바다에 삼각파도가 몰아치듯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10초, 간결명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기성세대 아빠가 망설이는 동안 화제는 벌써 저만치 달아난다. 실패다. 줄임말과 단문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신세대 일원에게 위키피디아식 설명도 번거롭다. 중간고사 벼락치기에 정신없는 딸은 ‘경제민주화란 말이야’로 시작하는 아빠의 진지함을 뿌리치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대상을 지정했더라면 답은 5초 안에 나왔을 것이다. 재래시장, 골목상인들에겐 ‘대규모 유통기업의 확장을 막는 것’이 그것이다. 생계가 막막한 건설 잡역부들에겐 주택경기 활성화와 함께 쏟아지는 잡일이 경제민주화다. 농어민들은? MB정부가 과감하게 취소해 버린 비료, 농자재 보조금, 저리 영농자금을 재개하는 것, 빈 배로 귀항해도 호구지책은 걱정 안 해도 되고, 태풍에 망가진 양식장을 값싸게 보수하는 일, 그런 것들이다. 생업전선에 선 사람들은 당장이 더 급하다. 청년들에겐 부모 기대에 근접하는 좋은 일자리, 실직자는 재취업, 퇴직이 닥친 700만 베이비부머들에겐 가방 들고 나갈 수 있는 작은 사무실, 그게 경제민주화에 투영된 서민들의 바람이다. 뭐 그리 거창한 개념이 필요한 게 아니다. 양극화의 원인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지식인 담론은 당장의 생계 걱정과 별 관계가 없다.



 그런데 대선 주자들과 캠프 브레인들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극약처방으로 수렴시켰다. 이른바 ‘재벌 때리기’다. 5년마다 한 차례씩 치도곤을 치렀던 재벌들이 어지간히 맷집을 길러왔건만 이번만큼은 사정이 좀 다르다. 국민들은 선명하게 알아차렸다. 100대 대기업의 총매출액이 100만 개 중소기업을 합한 것보다 더 크고,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4대 재벌의 비중이 50%를 넘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감 몰아주기, 납품가 후려치기, 기술·인재 빼가기 같은 착취성 관행이 중견기업을 괴롭혔으니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노무현 정권 때 재벌 군기잡기에 실패한 민주통합당이 독전대를 다시 규합해 보국안민의 깃발을 올린 이유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재벌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구국의 선약임을 만방에 고한 것이다. 그 여파가 거셌던가, 경제계의 생리를 조금 맛본 안철수 후보가 우물쭈물 따라 나서더니 재벌개혁위원회, 계열분리명령제 같은 극단 처방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어떡하지?’- 지난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로 재미를 본 새누리당은 수위조절에 고민 중이다. 길 건너 식당에서 매일 특선메뉴를 쏟아내는 판에 새누리당 주방장 김종인은 새 요리를 개발하느라 정신이 오락가락할 것이다.



 ‘재벌 때리기’에 온 힘이 모아지는 마당에 재벌 모임인 전경련의 반응은 조금 생뚱맞다. ‘경제민주화 같은 개념은 없다’는 원론식 대응, ‘성장동력이 훼손되면 서민들만 피해 본다’는 식의 위협성 발언이 국민정서 달래기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학 공식으로 국민을 달래기는 이미 글렀다. 쓸데없이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기 전에 자발적 혁신 프로그램을 내놓는 적극적 동참 의지가 필요하다.



 대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 정책 제1조에 써야 할 문구가 있다. ‘대기업-노조 담합구조를 폐기하는 것’이 그것이다. 양극화의 또 다른 주범은 숨어 있다. 경제민주화는 생산시장과 노동시장에서 독점세력을 규제하는 것이다. 생산시장의 독점 주역이 대기업임은 잘 알려져 있지만, 노동시장은 강성노조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다. 특히 민주노총 중심의 독점이 하청기업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에 고착시켰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그걸 규탄하는 정치인은 정치생명이 끝장날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5초 안에 말하면, 민주노총은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공의 적’이다.



 왜냐고? 민주노총 출범 이후 16년 동안 강성노조는 노동자들의 일사불란한 정치세력화를 위해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사업장을 규합해 민노당을 중앙무대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도부 몇몇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대기업 노조원들이 잔업을 독점했고, 해고 불가, 임금 인상이란 온갖 특혜를 누리는 동안 하청 기업 비정규직은 삭풍이 몰아치는 들판으로 내몰렸다. 대량해고와 구조조정 때 그들은 노조원들의 희생양이 됐다. 재벌기업주와 결성한 단단한 담합구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800만 비정규직을 딛고 세웠던 민노당을 주사파에 헌납했다. 그리고 재벌 때리기로 일관되는 경제민주화 논쟁의 뒤편에서 결말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 공분을 낚아채기 위해. 담합구조가 버티는 한 양극화·비정규직 해소를 위한 어떤 정책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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