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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세계 금융불안, 끝은 언제인가

중앙일보 2012.10.23 00:29 경제 10면 지면보기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수년간 봐오던 익숙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전면 구제금융 조건을 놓고 스페인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추가 지원을 받고 싶다면 허리띠를 더 졸라매라고 요구하는 채권자와 굳이 자금지원을 받을 필요 없다는 채무자 간의 신경전이다. 해외투자은행인 노무라는 벼랑 끝 전술을 쓰고 있는 둘 중 누가 먼저 양보할지가 관건이라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벼랑 끝 대치도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금융시장은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시장참가자의 군집행태(herd behavior)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버블의 형성과 붕괴는 불가피하다. 킨들버거가 『광기, 패닉,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지목했던 세계 10대 금융거품은 가깝게는 2000년 나스닥 거품에서 멀게는 1636년 네덜란드 튤립 투기까지 시대와 상품을 넘나들고 있다. 버블형성 과정에서는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국면에서 하버드대 조겐슨 교수는 “미국의 경제성장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버블이 붕괴되고 경제가 회복하기까지는 예외 없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렇다면 2007년 미국 주택시장 버블 붕괴로 시작된 후 리먼 사태와 유럽 재정위기로 모습을 바꿔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금융위기는 얼마나 더 갈 길이 남은 것일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따르면 과거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긴축과 고통의 기간은 평균 6~7년 정도였다. 경제학자인 로고프와 레인하트도 금융위기로부터 회복이 나타나기까지는 일반적으로 7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다고 추정했다. 리먼 사태가 발생한 시점이 2008년 하반기니 2015년 말께에야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미국 연준(Fed)이 경기부양을 위한 초저금리 기조를 2015년 말까지로 제시한 점과 일맥 상통한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유로존의 시스템 존립에 대한 위험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저성장, 실업 등의 문제는 최소한 201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독일 등 유로존을 지탱하고 있는 국가도 결국은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으로 관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올해 3.3%보다 높은 3.6%를 나타낼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본격적인 회복은 지루한 장기전을 예상했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블랑샤르는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2018년께가 되어야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전망은 앞으로 수년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유럽에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대한 구제금융 가능성이 상존한다. 중심국이 요구하는 구조개혁이라는 것이 결국 해고와 임금삭감, 정부지출 축소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유럽 경제의 본격적인 회복은 더딜 가능성이 크다. 국가재정 악화로 정부지출 여력이 약화돼 있는 주요 선진국은 양적완화와 국채 직매입 등 금융시장으로의 유동성 공급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중앙은행을 통해 공급된 자금이 투자와 소비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쉽게 풀려나간 유동성이 신흥국 채권시장 등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9월 말 신용등급이 B+에 불과한 아프리카 잠비아의 첫 외화국채 발행(debut deal)엔 전 세계 420개 기관, 120억 달러의 자금이 몰려 금리가 5%대에서 결정됐다.



 주요 선진국은 앞다퉈 유동성이라는 실탄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의 회복 시점이 무디스나 IMF의 전망처럼 3~5년 후가 될지, 아니면 더 짧은 기간이 될 것인지는 각국이 풀어놓은 실탄이 언제쯤 물꼬를 틀어 소비와 투자로 흘러들어갈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미국 주택시장의 회복조짐과 실업률 하락, 유럽 위기국 국채금리의 안정 등 시장이 보내고 있는 긍정적인 신호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해결을 위해서는 주요국 정부와 금융 부문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가 함께 풀려야 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마치 만성적인 질환처럼 세계 경제의 취약점이 언제든지 다시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짝 회복과 교착 상태가 반복되는 지루한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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