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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하듯 빠져든다, 그의 시

중앙일보 2012.10.23 00:28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기택 시인은 여섯 번째 시집을 내면서 ‘시인의 말’에 이렇게 썼다. “죄송하지만 또 시집을 낸다. 시 쓰는 일 말고는 달리 취미도 재주도 할 일도 없는 내 뛰어난 무능력과 활발한 지루함과 앞뒤 못 가리는 성실성 탓이다”고 했다. 영락 없는 시인의 말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기택(55) 시인은 ‘촉감의 기억’으로 시를 쓴다. 대상의 외피를 묘사하지 않고, 스스로 그 대상에 몸을 던져 살갗으로 마주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행위다.

3년 만에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 발표한 김기택 시인



 『껌』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새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학과지성사) 역시 독자의 피부에 밀착하는 시어로 가득하다. 19일 그를 만났다.



 “독자가 창조적으로 시를 읽으려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써야 해요. 번지 점프를 하듯, 단 몇 초라도 강렬하게 그 속에 빠졌다 나오는 것. 그런 걸 제가 즐기는 것 같아요. 엽기적으로.”(웃음)



 새 시집에서 특히 촉각을 자극하는 건, 생사를 넘는 자의 절규다. 기실 죽음은 그의 줄기찬 관심사였다. 이번엔 보다 구체적인 사건·사고가 등장한다. 자살자의 이야기인 ‘넥타이’를 보자.



  시인은 숨이 넘어가는 순간을 ‘목뼈가 으스러지도록 넥타이가 목을 껴안는다(중략)//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 라고 묘사했다.



 ‘목을 조르는 스타킹에게 애원함’은 어떤가. 성폭행 후 살해당하고 있는 한 여성의 고통을 ‘목 조르는 팔뚝 속으로 스며드는 월척 같은 파닥거림으로/그 꿈틀거림으로 더욱 짜릿해져가고 있을 손맛으로’라고 썼다.



 시인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죽음에 관심이 없다. 단지 죽음이 제 몸에 들어왔을 때 그 순간의 감각을 기록할 뿐이다. 하지만 그 기록은 살해의 비인간성을 온몸에 새기게 한다. 시인은 “누구나 거쳐가는 것인데 점점 죽음이 참혹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시인이 죽음을 처절하게 그릴수록 우리의 생은 더 선명해진다. ‘커다란 나무’가 그런 아이러니의 예다. 이 시는 나무에서 줄기가 갈라지는 모습을 거칠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집의 제목인 ‘갈라진다 갈라진다’는 이 시에서 나왔다.



 “팔, 다리도 그렇고 길이나 불길, 심지어 사람관계까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갈라집니다. 그런데 갈라지는 것은 찢기는 고통이거든요. 고통과 성장이 맞물리는 에너지인 것이지요.”



 ‘풀’이란 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풀은 콘크리트에 덮여 질식사한 듯 보였지만, 갈라진 사이를 비집고 다시 자라난다. 대신 시인은 이런 생명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오생근씨는 “해답을 찾는 시가 아니라 질문을, 혹은 질문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김기택은 20년 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시를 썼다. 처음엔 시간이 없어 출퇴근 길에 시상을 떠올렸는데, 계속 하다 보니 습관이 됐다. 7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 몇 군데 강의를 나가는 그는 여전히 거리에서 창작을 한다.



 그래서인지 지하철·버스·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시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에서 만난 엄마와 딸의 닮은 얼굴(‘모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학생에게 소리치는 노인(‘두 눈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하의실종 패션을 한 여성(‘스키니룩’) 등이 최근 시심을 자극한 인물이다. 그의 언어가 펄떡거리는 것은 현장에서 발아하고 숙성됐기 때문일 터다.



 오늘도 도시를 걷는 시인의 발에서 맹렬하게 시가 갈라져 나오고 있겠다.



◆김기택=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태아의 잠』 『소』 등. 미당문학상·현대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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