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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선 후보, 가계부채 문제 어설프게 접근 말라

중앙일보 2012.10.23 00:03 종합 34면 지면보기
2002년 대선은 신용카드 부실과 이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주요 이슈였다. 당시 노무현, 이회창 두 후보는 앞다퉈 카드 사용자들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공약을 쏟아냈다. 카드사의 연체 이율과 현금 서비스 수수료율을 낮추고,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개인신용회복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누가 당선돼도 원리금을 감면해주겠다고 하니 상환능력이 있는 사용자들조차 빚을 갚지 않으려는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대선 당시 253만 명 정도였던 신용불량자가 2004년 4월 382만 명으로 급증한 데는 이런 공약이 크게 작용했다.



 10년 뒤인 지금 다시 똑같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뇌관이 신용카드가 아니라 가계부채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때와 똑같이 대선 주자들은 당선되면 가계부채를 해결하겠다며 온갖 해법을 내놓고 있다. 주된 내용은 역시 상환 부담의 경감이다. 예컨대 문재인 후보는 최고 금리 상한선을 30%에서 25%로 낮추겠다는 ‘피에타 3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근혜 후보는 소유한 집의 일부를 공공기관에 매각하고, 이를 대출금에 상환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가계부채 해법을 주요 공약으로 내거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를 넘어선 하우스푸어, 가계 소득 중 원리금 상환 비중이 30%를 넘은 저신용·저소득층의 가계부채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들이 빚을 못 갚는 사태가 시작되면 나머지 계층의 부채도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가계부채는 바로 내수 부진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이 내년 우리 경제가 3.2%의 저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가계부채로 인한 내수 부진 때문이다.



 또 사실상 가계부채는 무려 1600조원에 이른다는 추정치가 나올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신용카드 부실을 뒤치다꺼리하느라 2년 가까이 허비했듯이 차기 정부도 가계부채를 해결하느라 골머리를 썩일 게 자명하다. 이런 점에서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해법을 제시하는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더라도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된다. 잘못 건드리면 엄청난 금융시장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가계부채는 양날의 칼이다. 줄이면 내수 부진이, 그렇다고 늘리면 부실의 심화가 우려된다. 섣불리 다루면 경제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휘발성이 강한 사안이기에 대단히 신중히 다뤄야 한다. 캠프의 몇몇 전문가가 앉아서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10년 전의 카드대란 때처럼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면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수 있다. 당선된 후 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어설픈 공약을 남발해선 안 되는 이유다. 대선 주자들이 2002년 카드대란을 반면교사로 삼기를 거듭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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