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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찰 쇄신, 경찰 힘만으론 안 된다

중앙일보 2012.10.23 00:01 종합 34면 지면보기
올 들어 경찰은 그들 조직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난맥상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연이은 강력사건엔 무대책으로 대응했고, 일부 경찰관은 지역 유흥업소와 유착해 불법적 이익을 추구했으며, 가장 최근엔 강도사건에 공모한 경찰관까지 등장했다. 수차 반복돼 온 경찰의 자정결의도 ‘백약이 무효’였다. 이 시점에 민간인으로 구성된 경찰쇄신위원회가 강도 높은 ‘쇄신권고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권고안은 현행법상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먼저 반부패 분야에선 부패 관련 경찰관과 민간인들의 신원정보를 공개하고, 부패 카르텔을 끊기 위해 경찰관과 유착한 업주들이 자진신고 하면 처벌을 감면해주는 ‘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를 권고했다. 신원공개제도는 미국 연방윤리청에서 비위공직자 및 뇌물공여자 실명과 비위사실을 공개하는 등 일부 선진국에서 강력한 반부패 관련 방안으로 활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현행법상 실행할 수 없다. ‘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도 경제 사안인 반독점법에서 활용하는 제도이나 반부패 사안에선 활용할 수 없다.



 또 쇄신위원회는 현재 우리나라 치안의 가장 큰 문제로 사회적 약자가 범죄에 더 많이 희생되는 ‘치안 양극화’를 지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치안역량 집중과 지역공동체와 관련 부서들을 연계하는 ‘협력치안시스템’을 만들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경찰 측은 현재 경찰력 부족과 부서이기주의에 따라 각 부처의 권한을 공유하지 않는 관행 등으로 쉽지 않은 과제라는 반응이다.



 쇄신위원회 측도 이런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현행법과 제도, 관습의 틀 안에서는 요즘 시대의 치안수요와 반부패에 대응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쇄신안을 만들 수 없었다”며 “법과 제도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의 난맥상이 법과 제도의 탓만은 아니겠지만 이것이 쇄신의 발목을 잡는다면 문제가 있다. 또 최근 신종 범죄와 범죄 수법의 고도화 등 치안환경과 수요가 바뀌고 있다. 차제에 경찰뿐 아니라 국회와 각 부처 등이 협력해 시대에 맞는 치안시스템을 새로 짜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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