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성전자·노키아가 휴대폰 몸체 부탁해 와”

중앙일보 2012.10.22 00:47 경제 4면 지면보기
남광희 KH바텍 대표가 아마존의 태블릿PC ‘킨들 파이어’용 몸체 일부(앞)와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 시리즈용 몸체 부속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도훈 기자]


장난감이라곤 보기 어려웠던 1960년대 경북 영양 시골 마을. 활이나 연·썰매 같은 놀잇감을 유독 잘 만드는 소년이 있었다. 손재주에 자신이 있던 소년은 공대에 진학했다. 지금 그는 삼성전자·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에 휴대전화와 태블릿PC용 부분품(모듈)을 공급하는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동통신기기의 외부 골격, 그러니까 몸체를 만드는 회사다.

중견기업 파워리더 ⑧ 남광희 KH바텍 대표
34세에 외국계 기업 부장 된 후
“현장이 즐겁다” 부품회사 차려
갤럭시S3용만 하루 35만 개 제작



 KH바텍의 남광희(53) 대표. 92년 회사를 세워 연매출 30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일군 그는 자칭 ‘영원한 공돌이’다. 경북대와 연세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83년 현대중공업에서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3년 뒤 영국계 다국적회사 ‘다이나캐스트코리아’에 스카우트됐다. 항공기·자동차·잠수함 부품 같은 것을 만드는 회사였다.



 두각을 나타내 대리로 입사한 지 4년여 만에 부장이 됐다. 서른네 살 때였다. 그러나 너무 빠른 승진은 고민이 됐다고 했다. 당시 외국계 기업에서 한국인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없었다. “지금 부장인데 다음은…”이라며 미래를 걱정하게 됐다.



 남 대표는 “앞날도 앞날이지만 더 힘든 게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부장이 되면서 현장으로부터 멀어진 것이었다.



 “기술을 개발하고 공정을 개선하는 재미난 일을 두고 책상에 앉아 결재만 하려니 견디기 어렵더군요.” 고심 끝에 ‘내가 잘하는 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접고 92년 KH바텍(당시 금호)을 차렸다. 고향에서 가까운 경북 구미에 공장을 짓고 오디오·비디오 부품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들어 정보기술(IT) 쪽으로 눈을 돌렸다. 노트북 PC를 열고 닫는 장치인 ‘힌지(경첩)’용 부품을 미국 업체에 납품했다. 품질을 인정받아 이내 부품이 아니라 힌지 전체를 만들어 공급하게 됐다.



 업계에 입소문이 나면서 삼성전자와도 힌지 거래를 하게 됐다. 그 뒤 무선호출기·시티폰·피처폰의 부품을 만들어 삼성전자에 공급했다.



 스마트폰 보급 초기에는 노키아 덕분에 매출이 급성장했다. 2000년대 후반 노키아가 스마트폰 ‘N97’을 내놓기 위해 준비를 할 때였다. 몸체 공급을 놓고 대만 팍스콘과 경합이 붙었다. 팍스콘은 현재 애플 아이폰 등을 하청 생산하는 업체다.



 N97 몸체는 화면 부분을 밀어 올리는 ‘슬라이딩’과, 밀려 올라간 화면을 90도로 돌려 가로 화면을 만들 수 있는 ‘틸팅’이 가능해야 했다. 연구진 전원이 수개월간 밤낮없이 매달려 꼭 맞는 부품을 개발했다. N97 양산 두 달을 앞두고 노키아 본사의 구매총괄 부사장이 구미 공장을 찾아와 말했다. “팍스콘은 실패했다. KH바텍이 전량 공급해 달라.”



 노키아와 손을 잡으면서 2009년 KH바텍의 매출은 4700억원대로 치솟았다. 1년 새 약 140%가 늘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노키아가 주저앉는 바람에 이듬해 KH바텍의 매출 역시 3000억원대로 내려갔다. 지난해엔 노키아 납품을 위해 2008년 지었던 중국 톈진(天津) 공장으로 구미 직원 수십 명을 배치하는 식의 인력 조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올 들어 삼성전자 제품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KH바텍 실적 또한 다시 호전되고 있다. 갤럭시S3용 몸체만 하루 35만 개를 대고 있다. 요즘은 구미와 톈진, 올해 문을 연 중국 후이저우(惠州) 공장을 100% 가동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남 대표의 경영철학은 ‘과실을 함께 나눈다’는 것. 연초 사업계획을 발표할 때 “성과가 나면 직원들과 이렇게 나누겠다”고 미리 밝힌다. 그는 “직원들과 성과를 나눌 의지를 보이면 혹시 모를 위기가 찾아와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