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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버린 톤즈 밴드 “파더쫄리, 저희 연주 들리나요”

중앙일보 2012.10.15 01:57 종합 2면 지면보기
남수단의 ‘톤즈 브라스밴드’ 단원들이 14일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에서 고(故) 이태석 신부의 묘지 위에 국화를 헌화하며 명복을 빌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휘봉을 놓치지 않아야 할 소년 연주자의 눈이 자꾸만 사진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움푹 팬 소년의 눈에선 어느덧 굵은 이슬이 그렁그렁 맺혔다.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방인 브라스밴드의 낭랑한 화음이 전남 담양의 가을 들녘에 메아리쳤다. ‘고향의 봄’과 성가곡 5곡의 연주가 끝나자 29명의 소년·소녀 단원들은 털썩 무덤 앞에 주저앉았다. 평소 타인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걸 수치로 여긴다는 딩카족의 후예들이건만 이날 이 순간만큼은 예외였다. 단원들은 무덤 앞에 놓인 사진 속의 낯익은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흐느끼다 끝내 목청 놓아 울었다.

‘울지마 톤즈’ 남수단 밴드 29명 방한
이태석 신부 묘 앞서 고향의 봄 연주
“진짜 아버지 같았는데 … 그리워요”



 액자 속에서 온화한 미소로 화답한 사진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고(故) 이태석(1962~2010) 신부. 전쟁의 참화에 폐허가 된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한국의 슈바이처’라 칭송받았던 의사 출신 신부였다. 그가 혼을 바쳐 가르치고 보살핀 ‘톤즈브라스밴드’가 14일 오후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의 이 신부 묘소를 찾아 진혼의 음악회를 연 것이다. 2010년 이 신부가 한국에서 선종한 지 2년 만이자 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위해 귀국한 지 3년 만의 재회는 이처럼 생사를 달리한 만남이었다.



생전의 이태석 신부와 남수단 톤즈 마을 소년들.
 아순타 아조크(18·여)는 “파더 쫄리는 1년 만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뒤 한국으로 떠나셨어요.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한국으로 와서야 뵙게 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쫄리’란 이 신부의 영어식 이름인 존 리(John Lee)를 톤즈 마을의 현지발음으로 부른 것이다. ‘파더’란 호칭에는 신부란 의미뿐 아니라 진짜 아버지와 같이 주민을 보살펴준 데 대한 고마움이 함께 담긴 것이라고 밴드 단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브린지 산토(15)는 “일곱 살 때 만난 신부님이 그립고,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며 “우리에게 트럼펫을 가르쳐 주셨던 신부님이 좋은 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지마 톤즈’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톤즈브라스밴드는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에 초청을 받아 한국에 왔다. 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만찬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서다. 단원들은 13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 신부가 선종 직전까지 투병하던 양평수도원을 방문해 이 신부가 겪었을 아픔을 함께 나눴다. 이어 14일 그토록 그리던 ‘파더 쫄리’의 묘지를 찾은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이 신부의 친형인 이태영 신부와 가족, 신도 등도 함께 참석했다. 이 신부의 누나 이영남(57)씨는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며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결국 자신은 가지 못하고 아이들이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1987년 의대를 졸업한 뒤 뜻한 바 있어 광주가톨릭대에 다시 들어가 신부의 길을 걸었다. 2001년 아프리카 오지인 수단으로 간 그는 딩카족 마을인 톤즈에서 의료봉사와 교육 활동을 펼쳤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열악한 환경과 싸워가며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했고, 학교를 세워 전쟁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 신부가 톤즈브라스밴드를 조직한 것도 그런 교육활동의 일환이었다.



 남수단 정부는 올 1월부터 한국수출입은행 등과 함께 ‘스마일 톤즈’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현재 남수단에서는 이 신부가 세운 학교 이외에 한국 정부의 후원으로 수도 주바(Juba)에 1억 달러 규모의 이태석 의과대학을 세우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사단법인 ‘이태석 사랑나눔(John Lee Foundation)’은 남수단 전역에 학교 보건소를 지어주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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