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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아내 보험금 8억탄 스님, 내연녀와…

중앙일보 2012.10.13 00:57 종합 18면 지면보기
동두천 암자 살인 사건 당시 남편과 내연녀가 짜고 죽은 부인 명의로 가입한 3개 생명보험 계약서.
한 보험회사의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올 3월 오래된 서류철을 뒤적이다 흥미로운 내용을 보게 됐다. 2003년 10월 아내는 보험 가입 7개월 만에 살해당했고, 남편은 아내를 죽이도록 교사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된 전력이 있었다. 당시 경기도 동두천 영탑사라는 사찰 주지(대처승)로 있던 남편은 2005년 5월 대법원 판결로 석방되자 나중에 보험금 8억원을 수령해 갔다. 아내를 직접 살해한 이 절의 행자승은 살인 혐의가 인정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현장 속으로] 서울경찰청 장기 미제 강력사건 전담팀
무죄 확정된 ‘동두천 암자 살인 용의자’… 7년 만에 뒤집었다

 보험청약서를 자세히 살펴보던 A씨는 특약사항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일반 병사나 자연사가 아니고 사건·사고를 당해 사망했을 때 사망보험금을 3배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특약을 추가한 만큼 보험금도 기본료에서 매달 몇 만원을 더 내도록 계약돼 있었다. 자신이 사건·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상하지 않는 이상 이런 특약에 가입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더구나 계약자는 보험 가입 수 개월 뒤 실제로 피살됐다. 비록 사건에 연루된 남편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긴 했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공소시효 두 달 남기고 수사 착수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청 장기 미제 강력사건 전담팀의 강윤석 반장을 만나 이런 내용을 전했다. 첩보를 입수한 강 반장과 팀원들은 처음엔 수사 착수를 망설였다. 이미 다 끝나버린 사건이라 형사소송법상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다시 수사를 해 단서가 나오더라도 남편을 같은 혐의로 기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용할 수 있는 다른 혐의는 (보험)사기였다. 확인해 보니 시효가 아직 두 달여 남아 있었다. 잘 해야 사기 사건밖에 안 되는 이 건을 굳이 다시 수사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민병희 팀장과 상의한 끝에 수사 착수가 결정됐다. 강 반장은 “단순 사기 사건이 아니고 살인 사건과 얽혀 있는 데다 뭔가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전담팀은 우선 죽은 부인이 가입한 것으로 돼 있는 3개 생명보험사의 보험청약서를 입수했다. 각각의 보험청약서에는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와 사망보험금액만 차이가 있을 뿐 A씨의 설명대로 특약사항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돼 있었다.



 살해된 부인이 직접 가입한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청약서에 남아 있는 서명과 부인의 필체가 같은 것인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부인의 필체가 있는 유품은 남아 있지 않았다. 부인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 늦깎이 입학해 공부한 사실이 확인돼 자필로 쓴 입학원서를 입수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동일인 필체인지 여부를 확인하려면 더 많은 자료가 확보돼야 가능하다며 판별 불가 의견을 내놓았다.



 부인이 남긴 기록을 찾던 강 반장은 유족들로부터 자필은 아니지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남겨진 기록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생전에 남편이 여신도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한 부인이 의심 가는 여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인터넷 포털의 주소록에 따로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주소록을 살펴보던 전담팀은 부인 명의의 보험청약서에 기록된 전화번호와 동일한 번호를 발견했다. 즉 내연녀로 보이는 이 여성이 부인 행세를 하고 남편과 함께 보험 청약을 한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했다.



피해자 주소록에 공범 전화번호가



 이번에는 당시 계약을 담당한 보험설계사들을 접촉했다. 10년 전 일이라 계약자를 정확히 기억해 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담팀은 죽은 부인의 사진과 남편 내연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얼굴을 확인시켰다. 설계사들은 어렵지 않게 실제 계약자가 내연녀라고 지목했다. 한 보험설계사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 근처 찻집에서 만나 계약을 했다”는 사실까지 정확히 기억해 냈다. 스님이라는 사람이 부인이라고 소개하며 사망 특약을 잔뜩 걸어 보험 청약을 하는 특이한 사례라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2명의 설계사도 같은 내용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사망 특약으로 보험 가입한 당사자가 실제로 몇 개월 후에 죽은 사례는 얼마 없어 분명히 기억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담팀은 내연녀를 긴급 체포해 주지(남편)의 요구로 보험사기에 가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남편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그는 이미 2006년 아이들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출입국 기록을 살펴보니 중간중간 입국한 기록도 나왔다. 전담팀은 가장 최근의 항공기 탑승 기록을 근거로 캄보디아 현지 영사관의 협조를 받아 실제 거주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또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을 찾아내 IP 추적도 병행했다. 남편이 캄보디아에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그 이상은 파악할 수 없었다. 전담팀은 남편의 여권을 말소시키고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전담팀이 수사에 착수한 지 4개월 만이었다.



 경찰의 수사 상황을 모르던 남편은 지난달 초 부상을 입은 발목을 치료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다 체포됐다. 밀림에 일을 하러 갔다가 갑자기 굴러온 통나무에 발목을 다쳤던 것이다. 현지에서 아무리 치료해도 호전되지 않자 더 좋은 병원에 가기 위해 입국하던 차였다. 강 반장은 “억울하게 죽은 부인의 한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연녀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민 팀장은 “ 살인교사죄 적용은 못하지만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반장은 “부인이 살해된 직후 행자승과 남편 모두 공범으로 지목돼 체포됐고, 항소심에서 징역 15년까지 선고받았기 때문에 당시 수사 담당자들이 보험 관계를 굳이 더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동생은 “왜 언니가 죽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준 경찰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녹음된 목소리가 결정적 단서



 전담팀이 해결한 사건 중에는 거액을 노린 보험사기 살인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노숙자를 유인해 수면제를 과다 복용케 해 죽인 뒤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며낸 한 무속인 사건이었다. 이 무속인은 사전에 두 개의 보험사로부터 모두 34억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한 상태였다. 이 사건 역시 SIU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첩보에서 수사가 시작됐다. 무속인 일당은 병원으로부터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검안서를 사망 하루 만에 발부받아 바로 시신을 화장해 버렸다. 시신 없는 사건이라 과연 혐의를 입증해 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전담팀은 무속인이 살아 있을 가능성 등 여러 가설을 세운 뒤 수사에 착수했다. 통신 수사(휴대전화 내역 분석)를 포함해 무속인 주변 탐문에 들어간 전담팀은 수사 3개월 만에 지방에서 숨어 지내던 무속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강 반장은 “숨어 지내던 집에 가스를 설치하기 위해 도시가스 회사에 전화한 목소리가 그대로 녹음된 파일을 찾아낸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보험계약 시 보험사에 남겨진 녹음 파일 속 목소리와 가스회사에서 입수한 파일 속 목소리가 동일했기 때문에 무속인이 살아 있음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민 팀장은 “시신은 이미 화장터에서 사라져 버렸고 노숙자 신분이라 신원 파악도 안 됐지만 이름 모를 영혼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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