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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다리로 71m 암벽 등반 … ‘600만불 사나이’ 불가능한 일 아니다

중앙일보 2012.10.13 00:50 종합 20면 지면보기
‘로봇 다리의 사나이’가 한국에 왔다. MIT대 미디어랩에서 생체공학을 연구하는 휴 허(48) 교수다. 10대 청소년 시절 산을 타다 조난당해 절단한 그의 다리는 더 이상 살과 피로 이뤄져 있지 않다. 대신 탄소섬유·티타늄·실리콘 등을 너트와 볼트로 연결하고 컴퓨터칩과 센서로 움직이도록 설계했다. 그의 로봇 다리는 사람의 다리보다 더 강해졌고 더 잘 달릴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높이 71m의 암벽을 타는 모습이 해외 언론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로봇 다리의 사나이’ 휴 허 MIT대 교수
17세 때 얼음 덮힌 암벽 오르다 조난
영하 29도서 사흘 밤 … 결국 다리 절단

 11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융·복합 국제 콘퍼런스 2012’의 연사로 나선 허 교수는 겉으로 보기엔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바지를 걷어올려 무릎을 드러내자 첨단기술로 제작한 로봇 다리가 드러났다. 허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술의 진보가 계속된다면 10~20년 뒤에는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로봇 다리를 하고 초고속으로 달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며 “다만 비용이 600만 달러가 아니라 6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벽등반가이기도 한 그는 기자 앞에서 킨텍스 3층 유리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도 보여줬다. 허 교수는 “앞으로는 신체의 장애가 아니라 기술의 장애가 관건이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인간이 신체의 한계라는 족쇄에서 해방되면 새로운 자유와 정체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족으로 올림픽도 출전 가능



‘로봇 다리의 사나이’로 불리는 미국 MIT대 휴 허 교수가 11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 3층에서 유리벽을 타고 오르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다리는 어쩌다 절단까지 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암벽을 타고 산에 오르는 걸 좋아했다. 여덟 살 때 이미 3500m가 넘는 바위산에도 올라갔었다. 장래 희망은 전문 산악인이 돼 아무도 오른 적이 없는 산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열일곱 살 때 심각한 조난사고를 당했다. 겨울에 친구와 함께 얼음으로 덮인 암벽을 오르다 갑자기 눈보라를 만나 고립됐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영하 29도의 밤을 세 번이나 넘겼다. 간신히 구조는 됐지만 동상으로 다리를 잘라내야만 했다. 얼어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을 받았겠다.



“더 큰 충격은 사고 뒤 의족을 달면서부터였다. 그때는 로봇 다리가 없어 일반 의족을 썼다. 의족으로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몹시 불편했다. 몸에 매달아 수동적으로 끌고 다니는 정도였다.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의족 분야에선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인 것을 보고 매우 실망했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내가 직접 디자인한 의족으로 암벽 등반을 다시 시작했다. 다리는 없지만 등반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익숙해지니까 오히려 사고 전보다 난도가 높은 암벽도 오를 수 있었다. 나도 놀랐고 주위 사람들도 모두 놀랐다. 그러고는 첨단 의족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과학기술로 극복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펜실베이니아주 밀러스빌대에 들어가 물리학을 전공했다. 이어 MIT대에서 기계공학으로 석사, 하버드대에서 생물리학(Biophysics)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지금도 암벽 등반을 계속하나.



“물론이다. 로봇 다리는 진짜 다리보다 가볍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암벽을 수직으로 오를 때 손으로 버티는 힘을 덜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필요하면 다리 높이를 조절해 키를 크게도, 작게도 할 수 있다. 발을 아주 작게 만들어 사람의 발로는 디디기 어려운 좁은 바위틈에도 디딜 수 있다. 높이 71m의 암벽등반도 성공했다.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에서 페이스북 친구가 되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휴 허 교수가 등반용으로 특수 제작된 로봇 다리로 암벽을 오르고 있는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로봇 다리로 빠르게 달릴 수 있나. 속도는 얼마나 되나.



“충분히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초당 10m 이상의 기록도 낼 수 있다. 연습만 열심히 한다면 올림픽에 나가도 될 정도다. 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100m에 13초 수준이다. 실제로 올해 런던 올림픽 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선수가 의족을 달고 400m 달리기에 출전하지 않았나. 올림픽에서 의족을 하고 뛴 최초의 육상선수였다. 외부 기구의 도움 없이 사람의 능력으로만 승부를 겨룬다는 올림픽 정신에 따르면 피스토리우스의 의족은 로봇이 아니라 몸을 지탱해 주는 스프링 같은 것이었다. 로봇 다리를 이용한다면 더 빨리 뛸 수 있었다.”



피스토리우스는 런던 올림픽 400m 달리기에서 45초44의 기록으로 1차 예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2차 예선에선 46초54에 머물러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400m 계주에선 결선까지 올랐으나 8위에 그쳐 메달을 따진 못했다. 그는 장애인 올림픽에도 출전해 100m 계주 금메달과 200m 달리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 1970년대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한국에도 수입돼 큰 인기를 끌었다. 언젠가 로봇 다리를 한 사람이 그처럼 초고속으로 달릴 수 있을까.



“나도 그 드라마를 기억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기술이 계속 빠르게 발전한다면 10~20년 뒤에는 드라마처럼 인간의 다리 속도를 훨씬 능가하는 로봇 다리가 나올 수 있다. 비용이 엄청나게 들긴 하겠지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로봇 다리 무게 사람 다리와 엇비슷



● 일반 장애인도 당신처럼 로봇 다리를 할 수 있나.



 “가능하다. 몇 년 전 동료들과 아이워크(iWalk)라는 벤처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에선 미국시장을 겨냥한 로봇 다리를 개발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점차 세계시장으로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 로봇 다리의 가격은 얼마나 되나.



“대당 가격은 수만 달러로 고급 자동차 한 대 값이랑 맞먹는다. 평범한 봉급 생활자라면 비싸게 느낄 순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처럼 사고로 다리를 잃었다고 생각해 보라. 개인적으로는 장애인이 됨으로써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길 것이고, 정부로선 장애인에 대한 사회보장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다. 장애인 한 명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많게는 수백만 달러에 달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로봇 다리가 비싸다고만은 할 수 없다. 특히 보험회사에서 사고 보험금을 받는 사람이라면 가격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 사람의 다리와 비교할 때 장단점은.



“로봇 다리는 곳곳에 컴퓨터칩과 센서를 달아 몸에 가해지는 자극을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게 해준다. 무게로 따지면 사람의 다리와 비슷하거나 가볍다.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고 오히려 젊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신체 기능은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지만 과학기술은 점점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면 우선 내 다리에 적용한다. 그래서 나는 나이에 비해 훨씬 건강한 다리를 갖고 있다(웃음). 단점이라면 관절 부분이 사람의 몸처럼 유연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사람의 뇌와 신경계통에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 중이다.”



● 언젠가 ‘600만불의 사나이’나 ‘로보캅’ 같은 사이보그도 출현할까.



“가장 큰 숙제는 뇌의 기능을 물리적·화학적으로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이다. 뇌와 신경계통에서 내리는 명령을 기계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가려면 앞으로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아직 초보적인 단계지만 과학기술은 인간의 몸을 바꾸기 시작했다. 내가 강연 제목을 ‘휴먼 2.0’이라고 붙인 이유다. 인간의 몸이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진다. 예컨대 노인들은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서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기술을 이용하면 신체 기능과 건강을 되찾음으로써 감정의 조절도 가능해진다.”



● 기술의 진보는 어디까지 가능하다고 보나.



“앞으로는 신체의 장애가 아니라 기술의 장애가 관건이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크든 작든 장애가 있다. 신체의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가 계속되면 인간이 신체의 한계라는 족쇄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은 새로운 자유와 정체성을 얻게 된다. 최종적으로 남는 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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