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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정치인 넘나든 트리에르바일레의 과거 사생활

중앙일보 2012.10.13 00:39 종합 24면 지면보기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부인 서맨사(왼쪽)와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동거인 트리에르바일레. 자기만의 개성과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남편보다 더 인기있는 전문직 퍼스트레이디들이 세계외교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수아 올랑드(58) 대통령의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47)의 자유분방한 사생활이 도마에 올랐다. 프랑스 언론들은 10일 출간된 정치평론가 크리스토프 자퀴비쳉가의 전기 『라 프롱되즈』(문제의 여자)를 인용, 그가 2000년대 초 우파정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파트릭 드브장(68) 사무총장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11일 보도했다. 시사주간지 ‘파리마치’의 정치부 기자이자 자녀 셋을 둔 유부녀였던 트리에르바일레는 애인인 드브장에게 30년 넘게 살아온 부인과 이혼하라고 요구했다. 드브장이 머뭇거리자 그녀는 그 틈을 이용해 사회당 사무총장이던 올랑드와 사귀었다. 문제는 올랑드는 당시 같은 당 동료인 세골란 루아얄(58)과 동거 중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올랑드와 드브장이 그녀와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면서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존중했다는 것이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최초의 동거녀 퍼스트레이디로 당선 때부터 화제가 됐다.


서맨사 캐머런 주 2회 일하는 워킹맘
미셸은 공무원 모아놓고 국정 설명
힐러리, 클린턴 집무실 위에 사무실
로라 부시, 남편 대신 단독 아프간행

 #2010년 5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의 안주인이 된 데이비드 캐머런(46) 영국 총리의 부인 서맨사(41) 역시 세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남편 총리 취임 넉 달 만에 딸을 출산한 서맨사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공무, 육아와 함께 자신의 일을 병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왕 찰스 2세의 후손인 명문 셰필드 가문 출신인 그는 브리스틀예술학교를 졸업했다. 유명 문구 브랜드인 ‘스마이슨’의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는데, 이 회사 제품의 중후한 이미지를 참신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바꿔놓은 주인공이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에도 이 회사 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주 2일제 근무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디자이너 출신답게 고급스러운 패션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발목에 작은 돌고래 문신을 새기는 등 젊고 개성 있는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선출직이 아닌 퍼스트레이디가 이처럼 선거의 주인공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머스 패터슨 하버드대 교수는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총리)의 첫 번째 조언자로 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퍼스트레이디의 전형도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 내조형으로 아내, 자애로운 어머니 혹은 국모로서의 모습이 거의 전부였던 과거 이미지와 달리 21세기 퍼스트레이디들은 전문성을 갖고 자기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는 ‘이 시대 여성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21세기 퍼스트레이디들의 내조 필수 조건은 ‘동반자 정신’이다. 이들은 대통령의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동반자로서 정치 무대에 서고 있다. 선출직이 아닌 이들의 역할을 설명하고 뒷받침할 만한 법률적 근거는 없지만 이제 국민들은 대선·총선에 앞서 차기 대통령(총리) 후보 못지않게 퍼스트레이디들의 면모를 살피는 데도 익숙해졌다. 바로 그들이 숨은 권력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현안들, 특히 문화·여성 관련 이슈는 퍼스트레이디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각료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21세기 들어서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2001~2009년 재임) 부인 로라 여사가 이런 현모양처형에 가장 가깝다. 교사와 도서실 사서 출신인 그는 교육·도서관 행정 지원 사업 등을 펼치며 그림자 내조를 펼쳤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후에는 탄압받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펼쳤다. 자신의 사무실에 17~25명의 보좌관을 상주시키며 아프간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2005년 3월엔 단독으로 아프간을 방문했다. 그는 백악관 시절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에 대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의 대변인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정치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로라와 대비되는 인물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1993~2001년 재임) 부인 힐러리 클린턴 현 미국 국무장관이다. 그녀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이 자리 잡은 웨스트윙, 그것도 대통령 집무실 바로 위층에 자신의 집무실을 뒀다. 사교 관련 시설이 있는 이스트윙에 집무실을 뒀던 과거 미국 퍼스트레이디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자신이 추진한 의료제도 개혁 법안이 좌절되면서 한때 웨스트윙 집무실 출입을 삼갔지만 96년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다방면의 국정 운영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조지워싱턴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사학을 연구하는 얼라이다 M 블랙 교수는 “특히 교육과 어린이 사업, 복지와 관련된 정책 중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20여 차례의 단독 해외 방문 일정도 훌륭히 소화해냈다. 남편 퇴임 후엔 상원의원에 당선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한판 승부를 벌이더니 오바마 정권의 얼굴인 국무장관까지 맡았다.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의 이미지는 로라와 힐러리의 중간 정도일까. 오바마가 대선 후보 시절 변호사였던 미셸은 시카고 대학병원에서 남편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연봉을 받던 성공한 전문직 여성이었다. 2006년 에센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감을 주는 인물 25인에 올랐고, 2007년 가장 영향력 있는 하버드 졸업생 100인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그는 백악관 입성 후 환경·교육·건강 분야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미셸이 환경·교육·자원봉사·여성 인권 등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대변인이나 친선대사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퍼스트레이디상을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미셸은 각 부처를 순회하며 공무원들에게 오바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가 하면 건강한 식문화를 강조하며 백악관에 친환경 유기농 채소 텃밭을 조성해 미국 내 텃밭 가꾸기와 주말농장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다.



 미국 퍼스트레이디 중 맨 처음 비서를 둔 인물은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부인 에디스다. 27대 대통령 윌리엄 태프트의 부인 헬렌은 노동문제 등 정치문제에 관여한 최초의 영부인이다.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 부인 이디스는 남편의 병환을 숨기고 집무를 대행하기도 했는데, 정부 문서를 결재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 압박을 받기도 했다.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노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시민방위국의 부장관을 역임했다. 공직에 몸담은 미국 최초의 퍼스트레이디였다. 이후 대통령은 가족·친지를 공직에 등용할 수 없다는 법률이 제정됐다.



 자신의 직업을 갖는 퍼스트레이디가 미국과 유럽의 전유물은 아니다. 마잉주 대만 총통의 부인 저우메이칭 여사는 남편 취임 후에도 금융기관에서 법률자문역으로 활동하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청바지 차림으로 정상 출근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사표를 쓴 저우는 남편과 함께 중미권 국가를 방문했을 때 저녁 만찬에서 춤을 춘 모습이 공개돼 ‘춤추는 총통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만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퍼스트레이디의 세계에선 패션도 경쟁력이다. 일찍이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여사가 깔끔한 7부 소매를 즐겨 입는 ‘재키룩’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미셸 오바마도 ‘검은 재키’로 불리며 퍼스트레이디 패셔니스타로 등극했다. 미셸은 특히 신진 디자이너의 원색 의상과 민소매 원피스 등을 즐겨 입으며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과감한 스타일을 유행시키고 있다. 에스콰이어지는 2007년 베스트드레서로 미셸을 꼽았고 그의 얼굴은 GQ·보그 등의 잡지 표지까지 장식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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