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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배틀'하던 10대, 뜻 말하자 엄청난 충격에

중앙일보 2012.10.13 00:37 종합 26면 지면보기
[삽화=김회룡 기자]


신세대 문화에 나름대로 관심이 있다고 자부하는 당신. 그들의 말을 얼마나 알아들을까. ‘짱’이나 ‘찌질이’ 같은 단어는 익숙할 테고 ‘듣보잡’이 ‘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라는 정도는 알 수도 있을 거다. 그렇다면 ‘히밤’은? ‘에바’는? ‘행쇼’나 ‘금사빠’는 들어봤는지.

채널 15 JTBC 스페셜
비속어 사용하는 청소년 97% 넘어
‘욕 배틀’ 장면 동영상 사이트에 버젓이
카톡 욕설에 시달린 여고생 자살도



 여기서부터 막힌다면 요즘 청소년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끼어들 생각일랑 하지 마시라. 욕설과 휴대전화와 오타가 뒤섞여 창조되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한국말을 따라잡기란 기성세대에게 역부족이다.



 신세대 은어의 원천은 욕이다. ‘히밤’은 ‘씨×’이란 말이 조금씩 발음을 바꿔 만들어진, 어른들은 잘 모르는 욕이다. ‘×나’라는 단어가 변모한 ‘조낸’도 같은 유형이다. 아이들이 온라인에 욕설을 자꾸 올리니 이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학생들이 다시 차단망을 피해가는 비법을 찾아내면서 진화한 산물이다.



 휴대전화를 끼고 살면서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을 쉽게 보내려 개발한 약어도 적잖다. ‘생일파티’ 네 글자를 절반으로 줄여 ‘생파’로, ‘행복하쇼’는 ‘행쇼’가 됐다. ‘생선’은 생선이기보단 ‘생일선물’인 경우가 많고 ‘갈비’ 또한 ‘갈수록 비호감’일 가능성이 크다. ‘금사빠’는 ‘금방 사랑에 빠지다’를 줄인 말이고 ‘갑툭튀’는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는 뜻인데 애들은 다 알아듣는다. ‘찐찌버거’(찐따, 찌질이, 버러지, 거지)라는 말도 등장했다.



 문자와 키보드 세대는 오타를 하고서도 기어이 새로운 단어로 굳혀버린다. ‘완전’을 입력하면서 ‘ㅏ’와 ‘ㄴ’의 타자 순서를 뒤바꿔 ‘오나전’이 됐는데 청소년들 사이에선 이게 맞는 말처럼 돼버렸다. ‘뭥미?’(뭐임?의 오타)도 마찬가지다.



 영어 단어를 어른들이 못 알아보게 위장한 사례도 한 유형이다. ‘에바’(지나치다는 의미로 ‘over’를 변형)나 ‘레알’(진짜라는 뜻의 ‘real’) 등이다. 이런 용어들이 띄엄띄엄 나올 때는 재미려니 했지만 이젠 한국어의 앞날을 염려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실 더 걱정스러운 청소년들의 언어습관은 욕설의 일상화다.



여중생의 ‘욕설 배틀’



 여학생들이 교실 책상에 앉아 쉴새 없이 거친 욕을 쏟아낸다. “×새×야, ×발×아.” 이런 욕설이 40초 동안 이어진다. 주변 친구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며 웃는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한 중학교의 쉬는 시간 풍경이다. 10대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른바 ‘욕 배틀(battle)’. 서로 욕을 주고받다가 먼저 당황하거나 욕으로 맞받아치지 못하면 지는 게임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욕 배틀을 입력하면 각종 수단을 동원한 욕 배틀 내용이 줄줄이 뜬다.



 심지어 욕 배틀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욕 제조 프로그램’까지 나왔다. 10대들이 욕을 일상어처럼 쓰는 것도 모자라 하나의 놀이문화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중학생 이모(12)군은 “친한 친구일수록 서로 욕을 더 많이 한다”며 “고치면 좋겠지만 적당한 선까지는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범생도 욕을 피해가기 어렵다. 김희영(17)양은 “평소 욕을 쓰지 않다가도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자연스럽게 욕이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청소년 언어실태 의식 전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10명 중 6명, 중·고등학생 10명 중 8명이 욕설이나 공격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속어나 은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초등학생이 97%, 중·고등학생은 99%에 달했다.



 이렇게 욕설이 일상어가 됐어도 매 앞에 장사 없듯 반복되는 언어폭력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지난 8월 여고 1학년 강모양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 11층 복도에서 몸을 던졌다. 강양의 유력한 자살이유로 욕설이 지목됐다.



 지난 6월 강양은 스마트폰의 ‘카카오톡’ 그룹 채팅에 초대를 받았다. 이미 16명의 친구들이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강양이 등장하자 40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욕설이 쏟아졌다. 처음엔 강양도 같이 욕을 했지만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욕을 듣기만 한 것으로 보인다. 유족의 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강양이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며 “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강양의 아버지는 “언어폭력도 명백한 폭력”이라며 “친구들의 욕설이 딸의 우울증을 심화시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0대들이 느끼는 언어폭력의 공포는 신체 폭력 못지않다. 지난 1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신체 폭력이 21%, 언어폭력이 18%였다. 박옥식 청예단 사무총장은 “10대들의 욕설이나 비속어 사용을 그저 놀이문화로 봐선 안 된다”며 “상대방이 불쾌함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언어폭력이고 이는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욕을 많이 하면 어휘력이 빈약해지고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폭력적인 행동을 동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눈에는 눈’ ‘욕에는 욕’



 청소년들의 언어습관 바로잡기는 모든 교육기관의 숙제다. 그러나 답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그런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효험을 본 사례가 있다. 그 현장을 가봤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두레자연고. 이 대안학교에선 ‘욕 수업’이 한창이다. 선생님이 욕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욕에 담긴 뜻과 그 어원을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13년째 이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신재영(42) 교사가 지난해 도입했다.



 신 교사는 먼저 학생들이 자주 쓰는 욕을 조사해 그 어원을 정리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또박또박 설명했다. ‘씨발’과 ‘씨팔’의 어원은 씹할·씹팔인데 여기서 ‘씹’은 여성의 성기나 성행위를 의미한다. 즉 그 뜻을 풀어보면 ‘함부로 성행위를 할’ ‘(여성이) 자신의 성을 팔’이란 의미가 된다.



 아이들 사이에서 ‘아주’ ‘매우’의 동의어가 돼버린 ‘존나’의 뜻도 알고 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존나는 ‘좆나’에서 변형된 것으로, 여기서 ‘좆’은 남성의 성기를 뜻한다. 즉 ‘성기가 튀어나올 정도’라는 의미의 성적인 욕설이다. 또 ‘엄창’과 ‘엠창’은 ‘엄마+창녀’의 줄임말로 어머니가 몸을 파는 창녀라는, 친구에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다.



 자기가 매일 쓰는 말의 참뜻을 알게 된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2학년 고성욱군은 “욕의 뜻을 알고 나니 내가 이렇게 더러운 말을 입에 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인 진성도군도 “소중한 친구들에게 써서는 안 될 말”이라며 “내 입에서 나오는 욕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이 수업이 시작된 뒤 교실에선 욕설이 부쩍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도로아미타불. 단박에 고치기엔 욕이 일상어가 돼버린 것이다. 신 교사는 ‘욕설 상호평가제’를 생각해냈다. 같은 반 친구들이 평가한 언어생활 점수를 국어 수행평가에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욕 사용 정도에 따라 좋음·보통·나쁨을 표시하는 방식이다. 놀랍게도 효과가 나타났다. 스스로 “말의 90%가 욕이었다”고 ‘자백’한 2학년 박모양에게 ‘언어생활이 나쁘다’는 친구 평가가 16명에서 한 학기 만에 5명으로 줄었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하다.



 남자와 여자의 성기가 등장하는 저급한 욕설이 줄어들자 유치원 때 사용했던 ‘바보’ ‘멍청이’ 같은 귀여운 욕이 돌아왔다. 처음엔 그런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바보와 멍청이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어느덧 자연스럽게 순한 욕설로 자리 잡았다. 신 교사는 “요즘 청소년들이 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데는 사회적인 책임도 크다”며 “사춘기 시절에 언어습관이 엇나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게 어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것 같은 아이들의 ‘새로운 언어’에 기죽지 말고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진정한 한국말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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