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74> 내달 8일 18차 중국공산당대회

중앙일보 2012.10.11 00:41 경제 10면 지면보기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8260만 당원 대표 2270명, 향후 5년 중국 발전 청사진 그린다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이하 18대)가 한 달 뒤인 11월 8일 열린다. 당대회는 5년마다 열리는 중국 최대의 정치 축제다. 이를 위해 400여 만 기층조직에 속한 8260만 공산당원 중에서 대표 2270명이 선발됐다. 이 과정을 ‘만리도일(萬里挑一)’이라 부른다. 그 정도로 지난한 정치행위라는 뜻이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펼쳐질 권력의 향연 속으로 안내한다.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다. 민주집중제를 따른다. 개인은 조직에, 소수는 다수에, 하급조직은 상급조직에 복종한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이하 상무위)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8260만 당원에게 권력이 뻗어나가는 일사불란한 체제다. 당대회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대회의 3대 축은 사상·이론·조직이다. 사상준비는 중앙의 선전계통이 맡는다. 당대회를 위한 사회 분위기 조성이 임무다. 이론 준비의 핵심은 정치보고서 작성이다. 총서기가 주도한다. 공산당의 헌법 격인 ‘중국공산당장정(약칭 당장·黨章)’ 개정도 포함된다. 조직 준비는 당대표 선발과 ‘양위(兩委)’로 불리는 중앙위원회와 중앙기율검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작업이다. 공산당은 지난 1년여 동안 31개 지방 성시(省市), 대만·홍콩·마카오, 중앙국가·직속기관, 군·무장경찰, 기업·금융계로 나눈 40개 선거단위별로 총 2270명의 당대표를 선발했다. ‘양위’는 상무위가 별도 회의를 수 차례 열어 작성한다. 조직 준비는 1년이 넘게 걸리는 가장 힘든 작업이다.




2007년 10월 15일 개최된 중국공산당 17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 주석단. 장쩌민(江澤民)을 비롯한 16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중앙에 자리잡았다. 앞줄 왼쪽부터 뤄간(羅幹)·우관정(吳官正)·자칭린(賈慶林)·우방궈(吳邦國)·후진타오(胡錦濤)·장쩌민, 원자바오(溫家寶)·쩡칭훙(曾慶紅)·리창춘(李長春). 2007년 6월 사망한 황쥐(黃菊)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중앙포토]




 당대회 한 달 전에 정치국 회의가 열린다. 대회 준비가 마무리됐다는 신호다. 이번에는 9월 28일 열렸다. 당대회 일정을 확정하고, 정치 보고 초고와 ‘당장(수정안)’ 원고를 검토했다. 차기 ‘양위’의 예비인선 명단 및 18대 주석단에 제출할 각종 안건도 여기서 확정했다.



 11월 1일 열리는 17기 7중전회(제17기 중앙위원회 제7차 중앙회의)는 17기 중앙위원 204인의 마지막 회의다. 여기서 18대 주석단을 확정한다.



 11월 7일 당대회 개막 전날은 가장 분주한 하루다. 40개 대표단위별로 회의가 세 차례 연거푸 열린다. 2007년에도 그랬다. 10월 14일 오전 17대 개막 전날 대표단별로 전체회의를 열고 단장·부단장·비서장을 뽑아 지휘체계를 갖췄다. 오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7대 예비회의에서 대회 일정을 확정하고 주석단과 비서장을 선출했다.



 당대회를 총괄하는 비서장은 당대회의 꽃이다. 14대는 차오스(喬石), 15·16대는 후진타오(胡錦濤), 17대는 쩡칭훙(曾慶紅)이 맡았다. 전체 예비회의가 끝나면 주석단만 참가하는 제1차 주석단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주석단 상무위원회를 구성하고 부비서장을 결정한다. 대회 부비서장은 보통 중앙조직부장, 중앙판공청 주임, 중앙선전부장, 정법위 서기가 맡아 왔다.



 당대회 주석단은 당대회의 영도기구다. 혁명시절 ‘옌안(延安)원탁모델’을 이어받아 앞뒤 8줄 단상에 오른다. 당의 역사·현재·미래의 연속성을 고려해 구성한다. 17대 주석단은 237명이었다. 10여 명의 원로 및 16기 상무위원과 중앙위원 109명이 포함됐다. 주석단 중 17기 중앙위원에 당선된 사람도 146명이었다. 기층당원은 8명(3.4%)에 불과했다.



 주석단 전체회의는 회기 중 적어도 세 차례 열린다. 매번 주석단 회의가 끝나면 대표단장은 대표단으로 돌아가 단조(團組)회의를 열어 주석단 회의 내용을 전파한다. 단장·부단장은 주석단과 일반대표 사이를 연결하는 일종의 연락장교인 셈이다. 보통 단장은 성 당서기, 부단장은 성장(省長)이 맡는다. 부단장이 2명이라면 다른 한 자리는 기율위 서기가 맡는다. 대표단 아래에 지역·산업별로 3~4개의 소조(小組)를 둔다. 회기 동안 대표단은 몇 차례 소조 토론회를 갖는다. 소조장이 책임을 지고 대회 보고문과 인선 내용을 토론한다. 회기 중 당대표 2270명의 의견은 대표소조→대표단→주석단→주석단 상무위원회로 이어지는 4단계 조직 시스템을 따라 끊임없이 집중된다.



 18대는 11월 8일 오전 인민대회당에서 정식으로 개막된다. 15대부터 17대까지 당대회 기간 동안 전체회의는 모두 다섯 차례 열렸다. 각각 ▶전기 중앙위원회의 보고 청취 및 심사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공작 보고 심사 ▶‘당장(수정안)’ 심의 통과 ▶신임 중앙위원회 선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선거가 이뤄진다. 초반 사흘 동안 총서기의 공작 보고와 기율검사위의 보고를 듣고 당장 수정안을 통과시킨다. 당대회 전반기의 핵심은 3만 자 내외의 정치 보고 내용이다. 향후 5년간 중국의 발전방향이 담긴다. 경제·외교 정책과 정치개혁에 대한 청사진이 나올지 주목된다.



 나흘째 시작되는 중앙위와 기율검사위 선거는 당대회의 최고 하이라이트에 속한다. 평온한 신·구 위원 교체를 위해 13대 이래 ‘예선’ 시스템이 도입됐다. 대회 사흘째 오후 주석단이 정식 ‘양위’ 예비 인선 명단을 만들어 전 당대표들에게 돌린다. 대회 나흘째인 11일 각 당대표는 하루 종일 이 명단을 숙지한다. 12일 전체회의를 열어 차액(差額)선거를 실시한다. 차액선거는 정해진 선출인원보다 많은 후보자를 놓고 투표해 최소 득표한 순서대로 초과 인원을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17기 중앙위원 예비선거에서 차액은 17명(8.3%), 후보중앙위원의 차액은 16명(9.6%)이었다. 결과가 예상과 달라도 큰 지장은 없을 정도의 수치다. 당대회 마지막 날인 14일 오전 각 대표들은 정식 등액 투표를 실시한다. 오전 9시 정각 박수로 두 명의 총감표인(총선거감독관)과 감표인 36명의 명단을 통과시키면서 선거가 시작된다. 대표 개개인이 각각 투표지를 3장씩 받는다. 붉은색 투표지에는 중앙위원회 위원, 갈색 투표지에는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분홍색 투표지에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위원 후보 명단이 적혀 있다. 각 투표지에는 후보들의 이름만 세로 네 줄로 빽빽하게 적혀 있다. 이름 뒤의 작은 네모 칸을 대표들이 각각 채우는 방식이다. 각 대표들이 투표할 때 감표인은 사진을 찍는다. 투표에서 ‘양위’ 탄생 선언까지 130여 분 걸린다. 명단이 선포되면 공식 당대회는 끝난다. 하지만 당대표들은 아직 베이징을 떠날 수 없다. 정치국원 및 상무위원이 아직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대회 폐막 다음날인 15일 오전 신임 중앙위원들이 18기 1중전회를 개최한다. 여기서 18기 정치국위원, 후보위원, 상무위원, 총서기를 선거하고, 중앙서기처 구성원을 통과시킨다. 중앙군사위 인원을 결정하고, 중앙기율위를 비준한다. 이날 5세대 지도부의 진용이 확정된다. 정오 전에 기자회견장에 최고 지도부가 첫선을 보인다. 오후에는 인민대회당 2층에서 신임 상무위원들이 2270명의 당대표 및 참관인원들과 회견하고 기념사진 촬영을 한다. 18대 대표들은 이 사진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베이징을 떠난다.





11인→9인→7인 … 상무위원 수 오락가락 권력투쟁




2009년 3월 양회(전인대·정협회의)가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으로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중국공산당 17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11인제→9인제→7인제→7인제 2.0 버전….



 베이징에서 흘러나온 18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구성 규모를 둘러싼 힘겨루기 과정이다. 치열한 권력투쟁이 읽힌다. 베이징 정가에 정통한 명경(明鏡)출판사의 허핀(何頻·47) 사장은 ‘중국밀보(中國密報)’ 최신호에서 차기 상무위원이 7명으로 압축될 때까지 엎치락뒤치락 이어진 막후 스토리를 폭로했다.



 시작은 11인제였다. 현 정치국원 중 68세 이하 전원을 승진시키는 방안이었다. 업무분장이 어렵고 숫자가 많다는 반발에 부딪혀 폐기됐다. 태자당 진영에서 9인제를 제안했다. 현 시스템과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장점으로 부각됐다. 시진핑(習近平), 리커창(李克强), 위정성(兪正聲), 리위안차오(李源潮), 왕치산(王岐山), 장더장(張德江), 장가오리(張高麗), 왕양(汪洋), 보시라이(薄熙來)가 꼽혔다. 공안을 총괄하는 정법위 서기직에 보시라이가 물망에 올랐다. 그는 왕리쥔(王立軍) 사건으로 낙마했다. 멍젠주(孟建柱)가 급부상했다. 5월 들어 상무위가 7인제로 바뀐다는 설이 퍼졌다. 18대 이후 은퇴한 총서기가 장쩌민과 후진타오 2명으로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7+2로 사실상 9인제가 유지되는 셈이다. 7인제 1.0 버전에서는 처음으로 왕양이 탈락했다. 그와 경쟁했던 보시라이 지지파의 반대를 막고, 올해 67세인 위정성에게 양보하라는 주장이 퍼지면서다. 아직 57세로 젊은 왕양은 2017년 19대를 기약하게 됐다. 8월 말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이후 위정성 낙마설이 퍼졌다. 태자당의 맏형이자 덩샤오핑의 아들 덩푸팡(鄧樸方)과 막역한 사이인 위정성의 낙마는 의외였다. 친형 위창성(兪强生)이 1985년 미국으로 망명한 사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대신 류윈산(劉雲山)이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그는 공청단파로 분류돼 왔지만 최근 장쩌민의 영문 전기를 발간했다. 시진핑 시대 상하이방의 환심을 얻기 위한 전술로 받아들여진다.



 현재 알려진 7인제 상무위 2.0 버전에는 시진핑, 리커창, 장더장, 왕치산, 리위안차오, 류윈산, 장가오리가 포진해 있다. 단, 이들이 각각 맡을 직무는 시진핑 총서기와 리커창 총리를 제외하고 아직 유동적이다. 오는 11월 15일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