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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서울 불바다” 위협 안 통한다

중앙일보 2012.10.11 00:00 종합 41면 지면보기
김국헌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미 미사일 지침이 타결됐다. 한마디로 만시지탄이지만 그 내용은 분명 진일보(進一步)한 것이다. 10년 전 한·미 간 협상에 참여했던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협상팀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번 타결은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상호 이해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과거 주한미군에서 근무했던 원로 미군 장성들의 조언도 상당히 유효했다고 본다.



 외교에서 관계당국이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인식과 논리, 정책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실무자들을 뛰어넘는 ‘돌파’는 최고위층의 결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외교는 이러한 여러 측면과 차원에서의 노력이 응축된 것이다. 이번 타결이 곧 있을 원자력 협정 협상에서도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사실 “한국은 이 정도면 되지 않는가”라는 미국인들의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미사일 사거리 800㎞ 이상은 주변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미국의 ‘세심한 배려’에 대해 “무슨 소리냐. 이웃 중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지고 있고 일본의 미사일 능력도 월등한데 한국은 왜 안 된다는 것이냐”고 항의할 수는 있다. 그러면 미국은 “이제 한국도 중국·일본과 동렬에 섰다고 생각하느냐”고 속으로 웃을 것이다. 물론 미국은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일곱 번째로 20-50 그룹(국내총생산 2만 달러 이상에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에 들어갈 정도로 발전한 것에 축하를 보내기는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국이 헤비급이라고 한다면) 중국·일본은 라이트 헤비급, 한국은 이제 미들급 정도에 들어섰다고 보는 인식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처럼 오래된 인식을 바꾸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이 1860년대 개항 시 서구 국가들과 맺은 각종 불평등 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5대 전승국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개정이 가능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영국 해군의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로 항공모함을 운영하지만 규모나 성능은 비교도 안 되는 경(輕)항모다. 미 항모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를 운영하지만 영 항모는 성능 면에서 한참 떨어지는 대잠초계기 님로드를 탑재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현지 해군 관계자에게 “그것으로 충분하겠느냐”고 했더니 씩 웃으며 “없는 것보다는 낫다(better than nothing)”고 답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해군의 후예로 세계 최초로 항모 운영을 시작한 그들이다. 정규 항모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것이다. 하지만 쇠락한 영국의 국력으로서는 이 정도 유지하는 것으로도 다행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 하에 ‘바람직한 최고’가 아니라 ‘가능한 최선’을 택하는 자세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전략에서는 능력이 우선이다. 의도는 변수이나, 능력은 상수이다. 국가 안보를 상대의 선의에 기대서는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의 확보’ 그 자체가 억제력을 생성한다. 미사일 지침 개정에 따라 이제 북한은 “서울 불바다”니 뭐니 하는 협박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 우리 군은 새로운 미사일 지침에 의해 반응속도가 빠른 탄도미사일과 정교한 순항미사일, 그리고 장시간 순항할 수 있는 무인기와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전폭기를 조합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앞두고 적극적 억제 능력을 갖추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해야겠다. 향후 미사일 개발과 운영, 배치 과정에서 한·미 간에 정보감시 능력을 일체화하고 통합지휘통신 체계를 긴밀하게 구축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관련 정부부처와 국회도 이를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김국헌 국방부 정책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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