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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의과대학과 병원도 수출하자

중앙일보 2012.10.05 00:01 종합 36면 지면보기
채인택
논설위원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민주화 열풍뿐 아니라 사회 변화의 폭풍도 거세다. 지난해 민주화 도미노에 화들짝 놀란 각국 정부가 국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주택 공급을 늘리고 쇼핑센터와 도로·철도 등 생활 인프라 확충과 함께 복지정책 강화가 한창이다. 복지라는 당근을 입에 물려줌으로써 흉흉한 민심을 달래려 한다. 한국이 복지확대 문제로 내부 토론이 한창인 동안 중동에선 복지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면서 제2 중동특수 시대를 열고 있다.



 이 지역 복지정책의 핵심은 보건의료 서비스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MENA 투자 전문 알마사 캐피털의 보고서가 이 분야 인프라 확충이 ‘정권 안보의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아픈 사람 치료라도 제대로 해줘야 왕정이나 독재에 따른 국민 불만을 줄여 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충고다.



 사실 오래전부터 보건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2억1400만 명인 이 지역 인구는 2025년에는 2억7200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평균수명은 지난 30년 동안 59세에서 71세로 늘었다. 1000명당 90명에 이르렀던 유아 사망률은 26명으로 줄었다. 지난 10년 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727달러에서 8187달러가 됐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당뇨·심혈관질환·암 등 서구형 질환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인구와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면서 보건의료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인프라와 인력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인구 1만 명당 병상 수는 21.6으로 미국(31.0)의 70% 정도다. 인구당 치과의사는 79%, 간호사는 71% 수준이다. 기존 체제로는 도저히 필요한 의료인력을 충당할 수 없다. 외국 의사를 모셔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의 아부다비 등 부자 산유국들도 지난해 수요 억제를 위해 무상의료를 줄이고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그동안 이 지역 국가들은 중증 환자를 외국에 송출하는 데 주력했지만 사정이 이렇자 자국에 의대·병원을 결합한 ‘메디컬 플랜트’를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테러 우려로, 유럽은 의료 사회화 때문에 해외진출 여력이 별로 없다. 한국은 의과대학이 40개나 되고 대부분 해방 이후 들어선 학교다. 그만큼 의대·병원 신설 노하우가 풍부하다. 보건의료 인프라가 절실한 MENA 지역 국가들엔 매력적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 산유국이 한국 유수의 의대에 의대·간호대와 종합병원을 패키지로 현지에 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선 보건의료 관련 대학과 종합병원이라는 지식기반 ‘고부가 플랜트’를 수출할 수 있는 거대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개발도상국 의사를 국내에 데려와 연수시켜주는 이종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고 아프리카 지역에 의대·병원을 짓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도 활발히 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민간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처럼 보건의료가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으로 발전해 경제적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의대 수출은 외국인 환자의 국내 의료관광 유치와 달리 국내 보건의료 인프라·시스템이 영향받지 않아 사회적 논란의 가능성도 별로 없다.



 한국에선 지난 수십 년 동안 보건의료산업이 인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의료기술·서비스 등에서 경쟁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산업 특성상 내수만 충당했지 수출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 보건의료산업도 수출·외화획득 산업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의료는 서비스산업으로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 고용 유발 효과도 크다. 청년실업 문제를 완화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대선 후보들도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대·병원도 수출할 수 있다는 이 작은 발상의 전환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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