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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행여’와 ‘혹여’

중앙일보 2012.09.28 00:41 경제 10면 지면보기
좋은 운수를 뜻하는 행운(幸運)의 행(幸)은 다행, 행복을 의미한다. ‘어쩌다가 혹시’라는 뜻의 ‘행여’는 ‘다행 행(幸)’에 접미사 ‘-여’가 붙어 생긴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쩌다가 혹시’라는 뜻으로 풀이돼 있지만 ‘幸’으로 보아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다. ‘행여’는 ‘운 좋게’ ‘다행스럽게도’의 의미가 강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행여’는 “주식에 직접 투자하려는 사람들은 행여나 고급 정보를 알 수 있을까 증권사 직원과 안면을 트고, 주식 투자 동호회를 기웃거린다” “집을 나간 아들이 행여 돌아올까 하여 그는 항상 문을 열어 놓았다”처럼 쓰는 게 적절한 용법이다.



 ‘행여’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로 ‘혹여(或如)’가 있다. ‘혹여’는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에’나 ‘어쩌다가 우연히’를 뜻하는 ‘혹시(或是)’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혹여’는 ‘행여’와 달리 두 글자가 모두 한자(漢字)로 돼 있는데, “혹여 대학 입시에서 불합격되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마라” “혹여 이 근처에 올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들러라”처럼 쓰인다.



 다음 예문을 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는 늘 이 유명한 그림을 한번 보려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람객들로 북적댄다. 또 행여라도 일어날 불상사에 대비해 무장 경찰이 호위하고 있다.” “귀성길에 행여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주위의 지나친 기대가 부담스러울 때, 꿈의 올림픽 무대를 행여 그르치면 어쩌나 두려울 때 스님의 말씀은 진정제가 됐다.”



 여기서 보이는 ‘행여’는 뭔가 부정적인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상황에 사용됐다. 이런 식으로 많이 쓰이는 언어 현실을 인정해 국어사전도 ‘행여’와 ‘혹여’를 비슷한 뜻으로 풀이해 주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까 우려하는 경우나 중립적인 경우라면 ‘행여’보다는 ‘혹여’나 ‘혹시’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여’와 ‘혹여=혹시’를 가능하면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 우리말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구사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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