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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의 월드 뷰] 일본, 영토분쟁보다 역사인식 공유를

중앙일보 2012.09.28 00:34 종합 32면 지면보기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일본 정부의 센카쿠(尖閣) 열도 국유화를 둘러싸고 일·중 양국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일본이 영토·영해 문제에 대해 ‘보류하기로 합의’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으로 간주해 중국 또한 실효지배 강화에 나설 것임을 선언했다. 또 반일 시위를 유도하고 일본 상품 배척 운동을 묵인하는 등의 대일 제재조치 카드를 꺼내고 있다.



 일본 정부로선 ‘국유화’를 취소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센카쿠 열도가 ‘영토문제화’됐고, 군사분쟁으로 발전할 위험이 커졌다. 영토문제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온상이다. 그것이 쌍방에 의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분출된다면 일·중은 ‘두 마리의 전갈’과 같은 관계가 될 우려가 있다. 서로 상대방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지만 그러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병 속의 두 마리 전갈 같은 상황 말이다. 일·중 간의 길고도 긴 투쟁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토문제에 대한 최선책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예전에 주창한 “지혜를 가진 다음 세대에 해결을 넘기자”고 하는 이른바 ‘유보(현상유지)론’이다. 일·중 양국은 30년 가까이 이 공식을 기본적으로 유지해 왔다. 그건 덩샤오핑의 평화대두론의 틀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돼 왔다. 이번에 이것이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9월의 ‘센카쿠 쇼크’ 때부터 그 징후는 나타났다. 중국은 영해를 침범한 중국인 선장을 일 정부가 체포한 데 항의해 희소금속 수출을 금지하고 일본 회사인 후지타의 사원을 구속하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덩샤오핑의 평화대두론의 토대는 여기서 흔들렸다. 일본 입장에선 ‘중국 리스크’, 중국 입장에선 ‘일본 리스크’가 급속하게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중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에선 일본에 초점을 맞춰 대중국 전략에 필요한 일곱 가지 원칙을 제안하고자 한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첫째,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이 ‘셈’을 잘못해 중국에서 섣불리 철수하지 않는 것이다. 과잉대응을 말아야 한다. 중국 비즈니스가 지속적 이윤을 창출하고 일·중 쌍방에 플러스가 되는 것이라면 이번 반일 시위에 대해서도 그냥 “중국 리스크 중 하나일 뿐”이라며 마음을 다잡고 ‘리스크 관리’를 하며 견디는 게 옳다. 그런 침착하고 냉정한 대응이 중국의 파트너로서 중국인 종업원으로 하여금 안심과 경의를 갖게 할 것이다. 한편 채산성이 안 맞고 정치적 허래스먼트(harassment·괴롭힘)에 노출되는 사업에선 철수하는 게 옳다. 그걸 조용히, 그리고 결연히 행하면 된다. 서로에게 ‘일·중 경제관계 냉각’은 힘들다. 누가 더 오래 참느냐다. 기세가 떨어진 일본이라지만 ‘참기 경쟁’만큼은 아직 국제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둘째, 일·미 동맹을 굳건히 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번에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일본 관리하에 있는 영역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일·미 안보조약의 방위 의무를 준수할 뜻을 명확히 했다. 이를 ‘클린턴 독트린’이라고 이름 붙여 정착시켜야 한다. 그래야 군사분쟁을 억제하는 안정 작용이 가능하다. 그걸 위해서도 일본은 자신의 영토·영해를 확실히 지키겠다고 하는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동시에 총리 관저의 외교·안전보장·위기관리 기능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미 백악관과 일 총리관저의 전략적 정책 대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정권 말기 레임덕에 빠진 이명박 정권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를 둘러싼 일·한의 영토문제를 정권부양의 지렛대로 삼은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또 조금만 있으면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뀐다. 일본도 머지않아 총선거가 실시돼 정권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양측 모두 “이전 정권에서 일어난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고 흘려보내고, 재출발하는 태세를 갖추는 게 가능하며 또 그래야만 한다.



 넷째,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를 재강화해야만 한다. 그중에도 인도네시아·베트남·미얀마와 전략적 관계를 구축할 때다. 이 3개국과 경제제휴를 강화해 이른바 ‘차이나+1’(중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협력 국가를 추가로 만드는 다각화 전략)의 주요 대상국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중국에 의해 분할 통치되지 않도록 아세안 통합 촉진에 지금보다 더 많은 힘을 빌려줘야 할 것이다.



 다섯째, 러시아와의 관계개선과 영토문제 해결이다. 현실 문제로 영토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 일·러 간의 북방영토(쿠릴열도)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선 “일본만 중국·한국·러시아 모두와 영토분쟁을 하고 있다”며 “동북아 영토문제는 곧 ‘일본 문제’인 것 아니냐”는 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러 간 현안을 해결해 일본은 전략적 결단이 가능한 국가임을 보여줘야 한다. 오히려 그렇게 할 ‘절호의 기회’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중국과의 ‘전략적 의사소통’ 라인을 구축하는 일이다. 일·중의 권력 중추 사이에 의사소통 회로를 만드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중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관계회복을 위해 물밑에서 열심히 땀을 흘린 조역들이 있었다. 다가와 세이이치(田川誠一·전 국회의원), 오키타 사부로(大來佐武<90CE>·전 외상),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전 자민당 간사장) 등과 같은 인물이다. 중국 측에선 랴오청즈(廖承志·전 전인대 부위원장), 왕다오한(汪道涵·전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 쩡칭훙(曾慶紅·전 국가부주석) 등이 있었다. 현재는 그런 이들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2010년의 센카쿠 쇼크 때 상당수 ‘밀사’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물밑에서 베이징을 찾았지만 중국공산당 중앙의 깊숙한 곳과 의사소통을 하진 못했다.



 일곱째, 중국과의 장기적 안정적 관계를 탐구함에 있어 역사인식을 조금이라도 공유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일본이 침략한 잘못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그 교훈을 토대로 예의 있는 대중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역사적 화해의 과정은 상대방이 있으며 (일본)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애국무죄(愛國無罪)’의 구호로 상징되는 자의적·정치적인 ‘역사와 기억’을 (중국이) 극복해줘야만 한다. 공산당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와 기억’은 아편전쟁에서 일·중전쟁 종결까지의 ‘국치’를 마그마(분화)로 삼는 복수정념(精念)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 정념이 펄펄 끓는 채 중국이 민주화로 향할 때가 바로 ‘두 마리 전갈’이 서로 ‘찌르기’를 시작할 때다. 그런 공포를 지금 느끼고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본사 객원칼럼니스트·전 아사히신문 주필

재단법인 일본재건 이니셔티브 이사장



정리=김현기 도쿄특파원



◆ ‘센카쿠 열도’ ‘일·미’ 등은 필자의 표현으로 본지의 표기 형식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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