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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서 배달까지 … 맛있게 드실 어르신 생각에 행복한 시간

중앙일보 2012.09.27 04:20 4면 지면보기
“너무 맛있구먼.” 이귀임(오른쪽)씨가 풀무원 ECMD 직원들이 직접 만든 동태전을 먹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봉사활동 나서는 지역 기업 - 풀무원 ECMD ‘행복한 밥상’



19일 오후 4시 송파구 잠실동 새마을시장. 신문지에 쭈그려 앉아 쪽파를 다듬고 있는 80대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자그마한 체구에 얼굴에는 깊게 주름이 패어 있었다. 아침부터 파를 다듬었는지 흙으로 새까맣게 된 그의 열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가득했다. 지금까지의 고달팠던 삶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노인의 이름은 이귀남(86·송파구 잠실동)씨. 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 5평 남짓한 지하방에 사는 독거노인이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그가 정성스럽게 다듬어 하얀 속살을 드러낸 쪽파 한 단의 판매가는 7000원. 흙에서 뽑아낸 쪽파 한 단을 5000원에 구입해 다듬어 2000원의 이윤을 남기고 판다. 이씨가 이곳에서 쪽파를 다듬어 팔기 시작한 지는 이제 겨우 일주일 남짓 됐다. “원래는 종이 박스 주워서 팔았제. 근디 요즘엔 하루 종일 파지를 주워 모아도 5000원도 벌기 힘들더라고. 그래도 이건 하루에 만원은 남으니께. 나도 먹고 살라면 뭐든 해야 할 거 아녀.”



 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이씨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홀로 명절을 보낸 지도 20년이 다 돼간다. “사실 나도 아들이 있었제. 내 고향이 전북 남원인디, 내 나이 마흔 살 땐가, 집 앞에 누가 갓난아이를 버려놨더라고. 그놈을 자식처럼 키웠제.” 정이 그리웠던 할머니는 처음 보는 기자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내가 못 배운 게 한(恨)이 되서 없는 형편에 대학도 보내고 열심히 키울라고 했제. 하지만 언제부턴가 연락이 안되더구먼. 다 내 복이 없어 그런 것인디, 누굴 탓하겠는가.” 명절이 되면 아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일도 이젠 지쳐버렸다. “추석 연휴 때 할 게 뭐 있남. 그냥 시장 나와서 파 다듬으면서 사람구경이나 해야제 ….”



한 달에 한 번 지역 이웃 120세대에 도시락 봉사



말을 이어가던 노인이 누군가를 보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를 미소 짓게 만든 건 ‘행복한 밥상’ 앞치마를 두르고 시장에 나타난 3명.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노인에게 음식을 만들어다 주는 풀무원 ECMD 직원들이다. 민경혜(41) 과장이 “잘 지내셨냐”며 인사를 건네자 노인은 앞치마로 급히 손을 닦더니 민 과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마운 사람들이 또 왔구먼.”



풀무원 ECMD 직원들이 전을 부치고 있다.
 쪽파를 팔던 자리가 밥상으로 변했다. 쪽파가 담겨있던 종이박스를 뒤집어 식탁을 만들고, 그 위에 음식이 차려졌다. 이날 직원들이 준비한 음식은 세 종류. 명절을 앞두고 전과 잡채, 뚝배기불고기를 만들었다. 족히 3~4인분은 되는 양이다. 집에 두고 먹을 수 있도록 항상 넉넉히 준비한다. 한귀임(35)씨가 동태전을 이씨의 입에 넣어주자, 이씨는 연신 “맛있다”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에 굶주렸던 그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ECMD 직원들과 이씨의 만남이 시작된 건 5월. 송파구에 위치한 풀무원 계열사 ECMD는 2000년도부터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해왔다. 초반에는 지역 푸드마켓에 물품을 기부하는 형태였다. 회사는 직원들이 보람을 느끼며 지역사회와 협력해 봉사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올해 초 송파구청과 논의 끝에 한 달에 한 번 지역 내 어려운 이웃 120세대에게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기로 했다. ‘행복한 밥상’ 프로젝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120명의 본사 직원들은 15명씩 조를 나눠 일 년에 두 번은 이 행사에 참여한다.



송파구 내 10개 복지관에 하루 500인분 전달



이날 봉사자들의 하루 일과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참여자들은 전 조리팀과 잡채팀, 뚝배기불고기팀으로 세분화됐다. 전 조리팀은 오전 내내 전을 부쳤다. 조리용 프라이팬에 세 명이 달라붙어 냉동상태로 된 전을 쏟아 붓고, 기름을 두르고, 전을 뒤집는다. 아침부터 요리를 하느라 분주한 봉사자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조은이(28)씨는 노릇노릇 익어가는 전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하면 제가 더 행복해요.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죠.” 봉사자 중 전문적으로 요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평소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일하던 그들이 한 달에 한 번 요리사로 변신하는 것이다.



  5월 초 음식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이 행사를 기획한 민 과장은 “처음 행사를 기획할 때는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한 가정 당 3~4인분을 만들어야 했다. 하루에 500인분 정도의 음식을 만드는 셈이다.



 음식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였다. 도움을 받는 이들은 배달한 음식을 바로 먹는 경우가 없었고, 냉장 보관했다가 저녁 식사 때 먹었다. 여름에는 음식을 배달하는 사이에도 음식이 변질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래도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니 그들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음식을 만드는 즉시 냉각하고, 포장기술도 익혀나갔다. 이날도 국물이 샐 수 있는 뚝배기불고기는 밀봉해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완성된 음식은 풍납종합사회복지관, 가락종합사회복지관 등 송파구 내 10개 복지관에 전달됐다. 이씨의 경우처럼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겐 직원들이 직접 배달까지 한다.



  봉사가 진행되면서 소외된 이웃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전용성(30)씨는 “봉사를 시작한 뒤 독거노인들을 볼 때마다 친할머니·할아버지 같이 느껴진다”며 "회사에서 진행되는 것 외에도 회사동기들끼리 모여 독거노인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등 동호회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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