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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무상보육 혼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중앙일보 2012.09.27 00:26 종합 33면 지면보기
신성식
사회부문 선임기자
무상보육을 둘러싼 혼란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0~2세 무상보육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하자 정치권이 여야 할 것 없이 “무상보육을 밀고 나가겠다”며 정부를 비난했다. 정치권 비난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시행 7개월 만에 무상보육 철회 방침을 내놨으니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정치권은 그러나 정부를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혼란의 진원지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다. 지난해 12월 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가 전격적으로 무상보육을 끼워 넣었다. 이에 앞서 보건복지위원회조차도 소득 하위 70%까지만 보육료를 지원하자는 정부의 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는데 예결위가 그렇게 한 것이다. 복지위는 보육 담당 상임위이다. 당시 예결위에는 보육이나 복지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기자는 당시 보육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간부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상위 30% 계층까지 지원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상보육을 하게 되면 집에서 키우던 애들이 어린이집으로 나올 텐데,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가정 양육 아동 7만 명이 쏟아져 나왔다. 공짜라고 하니 너도나도 어린이집으로 애를 보낸 것이다. 여기에 5618억원이 들어갔다. 전업주부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차지하면서 맞벌이부부 아이가 갈 데가 없어졌다. 보육료의 51%를 대는 지방정부들이 곳간 사정을 들어 보이콧을 선언했다.



 3월 시행 이후 이런 혼란이 이어졌는데도 지난해 말 무상보육을 결정한 정치권의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사과하는 사람도 없었다. 18대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19대 국회는 책임이 없는 걸까. 선거 공약이면 나라 살림이 어찌됐건 상관없다는 뜻인가. 정부가 내년 예산을 짜면서 무상보육 예산은 뺐는데도 복지예산이 4.8% 증가해 100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말 정치권의 기습적인 무상보육 결정에 소극적으로 동의한 정부 당국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국회에서 “정부가 동의할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철회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이다. 감사원은 예산 낭비와 엉터리 정책 결정을 감시할 책임이 있는데도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



 무상보육에는 모두 1조3085억원(상위 30% 아동 19만 명 지원분 포함)이 들어간다. 정치권은 차라리 이 돈을 보육의 질 향상에 쓰자고 제안하는 게 어떨까. 5.2%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하고, 열악한 보육교사의 인건비를 올리며, 표준보육비를 현실화하는 게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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