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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성장·안보 뒤엔 노동자 희생과 인권 침해”

중앙일보 2012.09.25 00:57 종합 3면 지면보기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박 후보는 이날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사과했다. [뉴스1]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24일 사과 회견은 그동안 자신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받아 온 과거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우선 그는 회견에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를 제3자적 시각에서 접근한다는 인상을 주려 애썼다. 박정희의 딸보다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종전에 비해 과(過)에 무게를 뒀다. 부녀간의 정에 얽매여 박 전 대통령의 과오보다 공적에만 집착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대목이다.

아킬레스건 과거사 문제 사과



 그는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며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상 이 부분에 대해 보다 냉정하고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한테는 무엇보다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가 가장 시급한 국가 목표였다”면서도 “기적적인 성장의 역사 뒤편에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고통받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고, 북한에 맞서 안보를 지켰던 이면에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받았던 일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어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가치의 훼손이란 점을 분명히 하면서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과거 5·16이 ‘구국의 결단’이라던가, 유신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한 발언에 비하면 많이 달라진 자세다. 그는 “돌아보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참 많은 분이 노력했다. 이젠 증오에서 관용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가자”고 했다.



 박 후보는 이날 유권자의 감성을 파고들려는 화법을 군데군데 구사했다. “국민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한 것이나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를 흉탄에 보내 드리고 개인적으로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했다”고 한 것이 그렇다. 박 후보는 회견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 측근은 “박 후보가 과거사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 주변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었다. 핵심 키워드는 후보가 직접 고른 것으론 안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국민이) 진심을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고만 말하고 당사 기자실를 떠났다. 기자들과 별도의 질의 순서는 없었다. 일문일답 과정에서 메시지의 초점이 분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였다고 캠프 관계자는 설명했지만 ‘일방통행 식 회견’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박 후보는 회견 때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잘못 발음해 민주당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캠프는 사과 회견이 추석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이번 회견은 이탈했던 박 후보의 소극적 지지층 일부를 돌아오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박 후보 사과 회견의 후속조치를 내놓기로 했다. 황우여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당은 이제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국민대통합위원회를 통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회견에서 “100% 대한민국은 1960~70년대 인권 침해로 고통을 받았고 현재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분들이 저와 동참해 주실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당장은 힘드시겠지만 과거의 아픔을 가진 분들을 만나고 더 이상의 상처로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박 후보가 유신시대의 피해자나 야권도 수긍할 수 있는 인사들로 국민대통합위를 구성해 피해 보상이나 의문사 진상 규명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과거사 발언



▶ 2004년 8월 12일 “아버지 시절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으시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 예방해)



▶ 2007년 7월 19일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유신시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희생하셨던 분들과 고통받으신 분들껜 진심으로 죄송.” (한나라당 경선 후보 검증 청문회)



▶ 2012년 7월 16일 “아버지로선 불가피하게 (5·16이란)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 유신시대 피해를 보시고 고통 겪으신 분들, 가족들에겐 진심으로 깊이 사과. 그러나 유신 국가 발전전략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토론회)



▶ 2012년 9월 10일 “(유신에 대해) 아버지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 (인혁당 사건은)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 그 부분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 2012년 9월 12일 “2007년 재심 판결, 사법부 최종 판단 존중. 과거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사례 있었다. 피해 입으신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 (‘인혁당, 두 개의 판결’ 논란 후 서면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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