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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화국’ 부산 두 망명 감독을 품다

중앙일보 2012.09.25 00:53 종합 28면 지면보기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영화 ‘코뿔소의 계절’에서 이슬람 혁명 때 투옥된 남편과 30년 만에 재회하는 부인 역을 맡은 모니카 벨루치. 남편이 죽은 줄 알고 모진 고난을 겪는 여인으로 나온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화제 10월 4일 개막
협박·테러 위협 시달리며 작품 활동
이란 고바디·마흐말바프 신작 공개

국제영화제는 국적·이념·인종 장벽을 넘어 전세계 영화인이 소통하는 장이다. 칸·베를린·베니스, 소위 세계 3대 영화제가 ‘시네마 리퍼블릭(Cinema Republic·영화 공화국)’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란 출신의 바흐만 고바디(43)와 모흐센 마흐말바프(55) 감독은 ‘영화 공화국’ 국적으로 활동하는 거장이다.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망명 중인 이들은 고국에 돌아갈 수도, 자신의 작품을 자국민들에 보여줄 수도 없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을 바꾸는 만국 공용어’란 신념 아래 전세계 영화팬들과 교감해왔다.



 이들이 다음 달 4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각각 신작 ‘코뿔소의 계절’ ‘정원사’를 내놓는다. 두 망명자 감독이 ‘영화 공화국’ 부산에서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고바디의 ‘코뿔소의 계절’은 아시아 최초로, 마흐말바프의 ‘정원사’는 전세계 처음으로 공개된다.



 ◆영화계의 집시



쿠르드족(이란의 소수민족) 출신인 고바디 감독은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2000,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 ‘거북이도 난다’(2004)에서 쿠르드족의 비참한 현실과 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다. 두 영화 모두 아이들의 고난에 앵글을 맞췄다.



 “쿠르드족 독립을 선동한다”는 당국의 협박에 시달리던 그는 이란의 강압적 문화정책을 비판한 ‘아무도 페르시안 고양이를 모른다’(2009)를 마지막으로 이란을 떠났다. 이 영화로 2009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뒤 이라크를 거쳐 현재 터키에 머물고 있다.



 마흐말바프 감독은 아프간 난민의 처참한 삶을 담은 ‘칸다하르’(2001)로 주목을 받았다. 아내(마르지예 메쉬키니)와 두 딸(사미라·하나) 모두 영화감독이다. 그는 21세기판 ‘노마드(유랑)’의 전형적 캐릭터다. 영화만큼이나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무엇보다 이란 사회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2005년 가족과 함께 아프간으로 건너갔다. 아프간에서 폭탄테러 시도가 발생하자 타지키스탄·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가 2009년 개혁파 대선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이후 테러 위협은 더욱 커졌다. 그 해 딸 사미라의 영화촬영 현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영화는 무기



고바디 감독은 이란 정부에 억압받는 쿠르드족의 정체성에 매달려왔다. 반면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란 국가체제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춘다. 고바디의 망명 이후 첫 작품인 ‘코뿔소의 계절’은 이라크와 터키에서 촬영됐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1979) 시절 투옥됐다가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아내와 재회하는 시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탈리아 유명배우 모니카 벨루치와 이란의 전설적인 배우 베흐루즈 보스기(미국 망명 중)가 부부 역을 맡았다. 고바디 감독은 여러 외신과 인터뷰에서 “이슬람 혁명 당시 27년간 투옥됐던 쿠르드족 출신 시인의 실화를 토대로 했다”며 “망명 이후 영화는 내 삶의 이유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마흐말바프가 아들 메이삼과 함께 촬영한 ‘정원사’는 이란 내 소수종교 문제를 다뤘다. 이란 정부의 탄압으로 본거지를 이스라엘로 옮긴 바하이교 성지에서 감독 부자가 종교와 평화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마흐말바프는 “종교를 보는 세대간의 시각차를 통해 이란에서의 종교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이란의 두 거장이 부산영화제에서 신작을 함께 공개하는 것은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로서의 부산영화제의 위상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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