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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세무조사 면제가 왜 경기대책인가

중앙일보 2012.09.25 00:41 경제 10면 지면보기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해 중소기업 세무조사를 대폭 축소한다.” 24일 정부가 내놓은 경제 활성화 대책이다. 연수입 100억원 이하 중소기업은 정기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얘기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때도,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세무조사 면제·유예 대책이 반복됐다.



중소기업 정기 세무조사 면제는 얼마나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까. 정확히 알 길은 없다. 100억원 이하 중소기업 41만 곳 중 2010년 세무조사를 받은 곳은 2122곳(0.5%)뿐이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100억원 이하 중소기업은 10년에 한 번 세무조사를 받을까 말까다. 애초 이들이 ‘무서운’ 국세청 볼 일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 중소기업에 굳이 세무조사 면제란 ‘따뜻한 배려’가 왜 필요했을까.



 더 의심스러운 것은 세무조사 면제가 ‘경기 활성화 수단’이 맞느냐는 점이다. 세무조사는 탈세범에게 세금을 추징하기 위한 도구이자, 동시에 ‘국세청이 다 들여다볼 테니 세금을 정확히 신고하라’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힘을 발휘하려면 세무조사는 늘 ‘엄격한 준칙에 따라 객관적으로 이뤄진다’는 신뢰가 필수다. 경제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였다 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 필요에 따라 언제든 면제할 수 있는 게 세무조사라면, 납세자들은 ‘세무조사 대상이 공정하게 선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경제가 좋고 나쁨에 따라 조사 강도가 세지거나 약해진다면 한국의 세무조사는 법과 제도 대신 공무원 재량에 좌우된다고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서울시립대 원윤희(세무학) 교수는 “가뜩이나 세무조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인식이 큰데, 이런 인식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적할 게 하나 더 있다. 100억원 이하 기업의 정기 세무조사 면제는 올 초 국세청 업무계획에 들어 있던 내용이다. 당초 계획된 것인데도 시행을 앞두고 다시 한번 새로운 대책인 양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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