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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추석 비에도 보은 아가씨 시집보내려면

중앙일보 2012.09.25 00:38 경제 10면 지면보기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추석 경기를 나타내는 두 속담이 있다. 하나는 흔히 쓰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다. 추석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다. 즐거운 놀이도 많아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 경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반대로 충북 보은군에서 유래한 ‘보은 아가씨 추석 비에 운다’는 어려운 추석 경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보은군은 예부터 대추나무로 이름난 고장이다. 대추나무는 삼복 중에 수정을 하는데 추석 무렵에 비가 내리면 열매가 영글지 못한다. 그래서 추석 비에 대추 농사가 흉년이 들면 혼수를 장만하지 못한 보은 아가씨가 시집가기 힘들어 눈물을 흘린다는 뜻이다.



 한가위를 며칠 앞두고 더없이 풍요로워야 할 이때, 보은 아가씨처럼 눈물 흘리는 국민이 많지 않을까 걱정이다. 수확철을 앞두고 불어닥친 태풍 탓에 올해 쌀농사가 32년래 최악의 흉작을 기록할 전망이다. 농림부 자료를 보니 85만ha에 달하는 전국의 논 가운데 태풍으로 인해 각종 피해를 본 논이 전체의 15%인 13만ha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수출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4.5%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고, 많은 기업이 내년 하반기에나 수출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경기도 통화 확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유럽과 중국·미국·일본 등의 경기가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한 연구소에 따르면 50 미만이면 경기 위축을 나타내는 제조업·서비스업 복합 구매관리자지수(PMI)가 9월 기준으로 유로존이 45.9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중국도 47.8에 그쳤다. 미국은 51.4로 간신히 기준치를 넘겼으나 지난해 동기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한가위를 즈음해 나라 안팎에 호우경보가 예고된 상황에서 혼삿길이 막힐지 모를 보은 아가씨를 시집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과 기업·정치권이 함께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놀이를 펼치는 것이 보은 아가씨를 위한 해답이 될 듯하다.



 먼저 국민은 구성진 가락에 맞춰 한바탕 강강술래를 펼쳐보자.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춥다 춥다 하면 정말 추워지는 법이다. 경제용어 중에 자기 실현적 예언이란 말이 있다. 모든 경제주체가 경제에 비관적 심리를 갖게 되면 실제 경기가 나빠진다는 뜻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도 “경제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가계와 기업의 심리를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왁자지껄 신명 나게 노는 것이 구름 낀 추석 경기 사이로 보름달을 띄우는 길이고, 움츠러든 어깨를 펴 신바람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거북놀이를 벌여보자. 거북놀이는 수수 잎으로 거북 모양을 만들어 쓰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노는 놀이다. 우선 정부는 세계경제 둔화라는 폭우가 기업에 미치지 않도록 수수 잎을 만들어야 한다. 각종 규제나 불합리한 세제, 경직적인 노동규제를 완화해 기업이 일자리라는 명절 선물을 집집마다 배달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야 한다. 기업도 비가 온다고 처마 밑에 숨지 말고 투자를 늘리고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주어 거북놀이 행렬을 키워야 한다.



 정치권은 줄다리기나 소싸움 같은 승패를 가르는 놀이를 자제해야 한다. 줄다리기는 이기는 편에 풍년과 안녕이 깃든다는 것인데 지금은 누구도 패하지 않고 모두가 승리하도록 서로를 손잡게 만들어야 할 때다. 편가르기 식 이념논쟁을 자제하고 과도한 경제게임을 삼가야 한다. 정치권은 놀이의 주체가 되는 대신 연출가의 역할을 맡아 국민과 기업 모두의 흥을 돋우도록 가락과 무대를 준비하는 데 힘써야 한다.



 조선시대 숙종은 궁중에서 쓰는 사기그릇인 푼주에 담긴 맛 좋은 송편을 먹고도 볼품없는 주발 뚜껑에 담긴 송편을 먹던 선비 내외의 다정스러운 모습이 부러운 나머지 수라상을 뒤엎어 버렸다고 한다. 추석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물질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과 정이란 것이다. 돌아오는 올 추석에는 고향을 찾는 모든 이가 민속놀이를 통해 물질이 아닌 사랑과 정을 나누고 나라 경제도 살리는 ‘더도 덜도 없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한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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