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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욱의 과학 산책]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미스터리 2

중앙일보 2012.09.25 00:31 종합 36면 지면보기
조현욱
암에 걸리지 않는다. 극히 장수한다. 산소가 희박한 강산성의 환경에도 끄떡없다. 피부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포유동물 중 유일하게 체온이 일정하지 않은 변온동물이다. 꿀벌처럼 여왕 한 마리가 번식을 독점한다. 인간과 93%의 유전자가 일치한다…. 이 같은 특성을 가진 동물은? 아프리카 동북부의 초원에 땅굴을 뚫고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다. 전 세계 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사육했지만 암이 발견된 경우는 없다. 생쥐나 들쥐의 수명이 3년 정도인 데 비해 이 쥐는 30년 가깝게 산다. 산소가 희박하고 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 농도, 산성도가 높은 땅굴 속에서 오히려 장수하는 것이다. 피부를 염산으로 문질러도 끄떡없다. 인간의 노화와 장수, 통증과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우선 산성 공기 속에서 멀쩡한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주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 저널에 발표된 미국 일리노이대학 팀의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이들 쥐를 산성 연기에 노출시켰다. 이런 경우 여타의 포유동물은 콧물을 흘리며 도망간다. 코에 있는 특별한 신경섬유가 활성화돼 3차 신경핵이라 불리는 뇌간의 신경집단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성 연기에 노출된 들쥐나 생쥐는 이 부위가 고도로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산성화에 끄떡없는 능력은 새로운 진통제 개발의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이 상처를 입었을 때 통증을 느끼는 것은 상처 부위가 산성화되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지난 2월에는 산소결핍증에 끄떡없는 이유도 일부 드러났다. ‘공공과학도서관’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비결은 칼슘 차단이었다. 칼슘은 기억의 형성을 돕는 등 뇌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지만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치명적이다. 문제는 뇌세포에서 산소가 고갈되면 칼슘 유입을 조절하는 평소의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심장 근육의 일부가 죽거나(심근경색), 뇌 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면(뇌중풍) 뇌세포가 죽는 이유가 이것이다. 하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산소가 희박해도 칼슘 통로를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간도 신생아 때는 이런 능력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없어진다. 일리노이대학 연구팀은 “이런 능력은 심근경색과 뇌중풍의 예방과 치료법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연구하면 할수록 배울 것이 더욱 많아지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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