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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싸이! 갈 데까지 가 보라

중앙일보 2012.09.25 00:24 종합 38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대학 축제에 아이돌그룹이 대세라는 건 오해다. 공연계의 3대 지존은 따로 있다. 3위로 꼽히는 DJ DOC는 압도적인 무대 매너와 끝없는 히트곡 행진이 압권이다. 그 위가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살아 있는 전설’인 김장훈이다. 그는 대학 축제 때 공짜로 얻어 온 소주를 박스째 쌓아 놓고 마신다고 한다. 하지만 단연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은 ‘싸이’다. 그는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느냐”며 싼 출연료를 고집하며 대학 캠퍼스를 ‘광란의 파티’로 뒤집어 놓는다. 그는 늘 맨 끝에 등장한다. 아이돌그룹들은 2~3곡 부르고 돌아가지만 싸이는 7~8곡이 보통이다. 속칭 ‘필’을 받으면 “갈 데까지 가 보자”며 새벽까지 단독 콘서트를 이어 간다. 가격 대비 효율이 단연 으뜸이다.



 싸이는 대마초 흡연과 음주운전 등으로 자주 말썽을 피웠다. 가장 쓴잔은 병역 파문 끝에 재입대까지 한 대목이다. 하지만 국방부가 가장 고마워하는 연예인이 싸이다. 지난해 11월 ‘연예 병사’를 취재하면서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군대를 두 번 갔다 왔는데도 싸이는 정반대다. 지금도 군 위문공연에 부르면 맨 먼저 흔쾌히 달려온다. 턱없이 적은 국방부 사례비도 마다하기 일쑤다. 자신의 돈까지 얹어 해당 부대에 통닭 파티를 열어 주곤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야말로 대박이다. 중독성 있는 리듬과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말춤이 지구촌을 휘젓고 있다. 모태 미남도 아니고 그냥 훈훈한(?) 외모의 코믹한 뮤직비디오에 전 세계가 춤을 춘다. 국내에선 현아와 유재석이 눈길을 끌지만 해외 반응은 색다르다. 저질 댄스의 ‘엘리베이터 맨’ 노홍철과, 어린이 놀이터에서 춤추는 일곱 살 황민우군에게 더 열광한다. 싸이 열풍은 개방이란 시대 흐름과도 딱 맞아떨어진다. 강남스타일은 인터넷망을 타고 공짜로 퍼지고, 곳곳에서 패러디물들이 올라온다. 그는 뒤를 쫓는 미국의 파파라치들에게 선언했다. “저는 초상권이 없습니다. 마음껏 찍으세요!”



 싸이 열풍에 대해 “역시 인생은 한 방”이란 비아냥은 듣기 거북하다. 싸이는 TV에서 이렇게 하소연한 적이 있다. “보통 3시간 넘게 공연을 하는데 2시간쯤 지나면 탈수증상이 일어나 산소를 흡입하고 와야 한다. 다리에 쥐가 나면 무대 밑에서 트레이너들이 침 40방 정도를 피가 나올 때까지 찌른다.” 싸이의 순발력과 무대 카리스마는 이런 공연을 통해 단련된 듯싶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말춤을 따라 배우며 하이힐을 벗으려 하자 “이 춤은 멋지게 차려입고, 싼티 나게 춰야 한다(dress classy, and dance cheesy)”는 명언을 남겼다. 자신의 에너지 근원을 묻는 파파라치에게 ‘알코올’이라 되받았다.



 개인적으로 강남스타일보다 2010년 말에 나온 ‘right now’가 더 마음에 든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에게 나쁜 비속어가 섞였다며 ‘18금’으로 묶는 바람에 쫄딱 망한 노래다. 하지만 유튜브에 일본어 자막을 입힌 똑같은 뮤직비디오는 멀쩡하게 자유로이 유통된다. 뭔가 어색한 장면이다. 어쩌면 문화를 바라보는 정부 부처의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모른다. 국내에서 비주류로 여겨져 온 싸이가 세계를 휘젓고, 정부 지원 없이 저예산 독립영화를 이어 온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정부의 눈높이와 글로벌 시각 사이의 아득한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강남스타일의 유튜브 조회 수가 2억5000만을 넘었다. 한국어로 된 노래가 최초로 빌보트 차트 1위에 오르고, 그래미상까지 받는 기적도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싸이는 right now에서 “지금부터 뛰어 볼란다. 지금부터 미쳐 볼란다”를 반복하며 외친다. 그래, 뛰어 보고, 미쳐 보고, 강남스타일 가사처럼 갈 데까지 가 보았으면 한다. 참고로 ‘월드스타’로 몸값이 오른 싸이가 이번 가을에도 전국 10개 대학 축제를 누빌 모양이다. 행사비도 올리지 않고 예전의 ‘할인가격’대로…. ‘뭔가 아는’ 싸이가 한국 대중문화의 새로운 역사를 계속 열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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