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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구령 맞춰 행진... 군사훈련? 호텔직원 조회!

중앙선데이 2012.09.23 03:21 289호 24면 지면보기
산시(陝西)성 웨이난(渭南)시 딩리위안(鼎立源)호텔 앞에서는 아침 8시부터 시끌벅적한 제식훈련이 시작돼 늦잠을 자던 나를 깨웠다. 이 호텔은 직원들의 단합과 기강 확립을 위해 매일 한 시간 훈련을 실시한다.
‘두드드드-.’
우박이 지붕으로 떨어지는 듯한 소리에 잠을 깼다. 전날 시안(西安)에서 오후 늦게 출발, 75㎞를 달린 끝에 산시(陝西)성 웨이난(渭南)시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 방을 배정받고 보니 마작 전용실이다. 침대 옆에 마작용 탁자가 검보라색 보자기에 덮여 있고 방에는 창문이 없다. 고문실로도 손색 없다. 방문이 열려 있는 앞 방에는 이미 판이 소란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실내 공기도 탁해 숙면을 취하기는 글렀다고 단념하고 뒤척인 것 같은데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아침이다. 밖에 나가자 우박은커녕 창창한 햇빛이 쏟아지는 기분 좋은 아침이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22 집체문화


딩리위안(鼎立源)호텔 앞에서는 대로변에 어울리지 않는 ‘군사훈련’이 아침 8시부터 벌어지고 있다. 여행 중 가끔 마주치는 광경이다. 훈련병들은 군인이나 예비군이 아니라 내가 묵은 호텔의 직원들이다. 직군별로 나눈 듯 ‘분대’마다 입은 제복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르다. 연분홍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짧은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들은 접객 분대. 같은 소속이기에는 키 차이가 많이 나는 아주머니들과 아저씨의 조리 분대. 옥상에는 발을 구르면서 우박 떨어지는 소리를 내고 있는 객실 분대. 숏 커트의 헤어스타일에 몸에 딱 달라붙는 감색 투피스 차림으로 전문 직업인 느낌을 주는 20대 후반의 여직원들로 구성된 지휘부. 이들은 어느 분대 할 것 없이 엄숙한 표정으로 구령한다.

미국이 중국 내륙을 침공할 경우를 대비해 비정규전에 투입할 민간인들을 훈련하고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차렷’‘열중 쉬엇’과 같은 기본 동작에서부터 ‘앞으로 가’‘뒤로 가’‘좌향좌’‘우향우’에 이어 일렬종대로 행진한다. 행진할 때 양팔을 앞뒤로 젓지 않고 손을 허리춤에 고정시킨다. 걸을 때도 무릎을 꺾지 않고 다리를 앞으로 번쩍번쩍 든다. TV에서 본 북한 군대와 비슷해서 공산주의풍 행진인 것 같다.

길을 잃다 우연히 맞닥뜨린 황토고원. 30만㎢의 대지가 구릉 하나 없이 펼쳐져 있는데 나는 그 남쪽 끝에서 있는 셈이다. 중국의 역사는 황토고원과 황하가 빚어낸 조각품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열이 안 맞고 들어올린 발의 각도가 제각각이다. 특히 조리 분대는 차렷 자세로 서 있는 것마저 불편해 보인다. 군대처럼 보이지 않도록 위장술까지 훈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을 찍어대자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이를 보이는 ‘분대원’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정도의 훼방꾼에 대오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는 집중력이 유지된다. ‘지휘관’에게 다가가 물으니 8시에 이런 의식을 거행한 뒤 업무에 들어간다고 한다. 군사훈련이 아니라 일종의 조회인가 보다. 하지만 이것이 식재료를 썰거나 객실을 청소하는 일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짐작이 안 된다.

“왜 이렇게 하느냐?”
“회사의 경영 방침이다. 직원들의 단합과 기강 확립을 도모한다. 딩리위안 그룹에 속한 어느 호텔이든 모두 아침 시간에 이 의식을 거행한다.”
그것도 한 시간씩이나 한다. 내 생각엔 지쳐서 조회가 끝난 뒤 각자 긴 휴식 시간을 가질 것 같다. 이 호텔뿐 아니다. 허베이(河北)성의 창저우(<6CA7>州)시에서는 분홍색 셔츠를 입은 남녀 학생들이 미용 가위를 손으로 놀리는 동시에 ‘삼렬 종대로 헤쳐 모여’를 하곤 했다. 아파트 관리원들도, 식당 종업원들도, 좀 규모 있는 집단이라면 이런 의식의 유혹에 빠지는 것 같다. 군사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한국인 여행자로서는 신기한 광경이다. 그들에게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내면화하는 의식은 아닌가 보다. 그러면 지금은 공산당의 일당독재 외에는 사라져가고 있는 사회주의의 유산인가?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몸짓을 하면서 연대감을 형성하려는?

집체행동은 이것만이 아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가본 중국 전역의 공원이나 도로변에서 다종다양한 집체행동이 벌어진다. 아침에는 보통 태극권(太極拳) 또는 체조를 하고, 저녁에는 군무를 춘다. 좀 부지런한 사람 같으면 아침에 체조를 하고 출근해서는 제식 훈련을 받고 퇴근해서는 군무를 출 것이다. 군무는 보통은 큰 녹음기를 틀어놓고 같이 추기도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큰 북과 꽹과리, 피리의 반주에 맞춰 부채 춤을 추기도 한다. 집단 검무를 추는 것도 봤다. 군무 참여자는 대부분 여성이지만 남성도 끼어 있다.

만약 사람들의 이목이 번다한 광장에서 혼자서 추라고 하면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같이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다. 이상야릇한 공범의식 같은 것이다. 심지어 외간 남자들의 손을 잡고 빙빙 돌다가 그의 가슴에 안겨도 그건 규칙적인 행동일 뿐이다. 이 순간만은 ‘나’는 종횡의 대열이 교차한 사분면의 한 좌표일 뿐이다. 거기서는 특출하게 잘 추는 사람보다 전체적인 조화가 중요하다.

한국에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농악이 있고 서양에도 콘트라댄스와 같은 포크 댄스가 있지만 중국처럼 어느 도시에서나 조금 터가 넓다 싶으면 군무가 벌어지는 곳은 내가 가본 세계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중국 특유의 풍물로서 자격이 있다. 인구가 많아서 개인이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이 작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춤조차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몸짓이 아니라 집단적인 운율에 맞추는, 기계적인 동작밖에 허용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기만 할 뿐 춤출 기회가 적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보다 낫다. 언제 어디에서나 편리하게 군무를 추려면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회를 하고 군무를 추다 보면 개인들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 전체의 부분이 개인이라는 느낌이 강해질 것 같다. 줄이 틀리거나 동작이 엇나가지 않도록 서로를 의식한다. 모두 집중해서 군중이 일사불란한 전체로 바뀔 때 아름다운 일체감을 느낀다. 서구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의 측면일 것 같다. 전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자신은 선택 이전에 어딘가에 이미 속해 있다는 느낌. 그러니 전체를, 전체의 대표를 내 손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어렵다. ‘중국인은 정치적인 자유가 없어 억눌리고 있다’는 서구의 선입견으로 본다면 결코 발견하기 힘든 중국인의 특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일체감을 담아낸, 가장 큰 그릇은 중국이다. 지금도 중화인민공화국이듯 중국의 국호가 중국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개인과 대별되는 전체로서 중국이 있어왔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나 위진남북조, 오호십육국, 오대십국의, 한 번에 수백 년간 계속된 분열기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중국으로 돌아오곤 했다. 중국은 36개국이 있는 유럽 크기의 땅에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기에 모자라지 않는 5000년 이상의 역사가 있고 인종적으로도 남방인과 북방인은 그리스인과 스칸디나비아인만큼 달라 보인다. 그런데 내가 만난 모든 중국인들은 희한하게도 중국이 하나의 전체여야 한다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14억 분의 1로 대접받아도 14억 명이 이루는 전체에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

나는 310번 국도를 따라가면서 일체감의 근원인 중국의 통일성을 탐구해볼 작정이다. 이 길에 단서가 있을 것만 같다. 310번 국도는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로라고 생각한다. 장쑤(江蘇)성 롄윈강(連云港)시와 간쑤(甘肅)성의 톈쉐이(天水)시를, 마치 빨랫줄처럼 일자로 잇는 1613㎞의 길이다. 이 길을 둘로 나눌 때 중심에서 서쪽의 566㎞에 중국 8대 고도 중 진의 시안, 후한과 당의 뤄양(洛陽), 상(商)의 정저우(鄭州), 송의 카이펑(開封) 등 4대 고도(古都)가 나란히 걸려 있다. 광대한 중국의 면적을 감안하면 다닥다닥 붙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310번 국도의 이 구간을 나는 ‘왕도의 길’이라고 부른다. 통일중국의 비밀이 숨어있는….

‘왕도의 길’도 종종 고속공로 G30에 징발당해 진입할 수 없었고 우회하는 길은 공사 중이어서 가로막혀 있다. 길을 잃어 웨이난시 외곽에 있는 한 마을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빠져나올 때 깜짝 놀라 급제동했다. 내리막길로 좌회전하는데 오른쪽으로 공간이 툭 터져 있었다. 핸들의 회전각이 컸으면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할 뻔했다. 발 아래 장대한 대지가 펼쳐진다. 마른 먼지가 곳곳에서 산불처럼 피어올라 이곳이 황토고원이라는 걸 대번에 확신할 수 있었다. 길을 잃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장관이다.

한반도보다 더 넓은 평면의 남쪽 끝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넓고 침적 상태가 가장 깊은 황토 분포구. 지질이 단단하지 않아 비에 쉽게 씻겨 내려가 황하로 흘러들어간다.
황하의 하상이 높아지면서 수로가 가끔 바뀐다. 그러면 중국의 역사적 생태계도 바뀐다. 가만히 누워있는 저 황토고원이 역동적인 중국 역사를 조각하는 거대한 끌인 셈이다. 천황(天黃)·지황(地黃)·하황(河黃)·인황(人黃)이라는 황색의 중국도 저 무덤덤한 대지에서 발원했다고 생각하니 말 없는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는 감동으로 가슴 벅차다. 더 높은 곳에서 보고 싶은 욕심에 화산(華山)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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