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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그네 가면 한 사람 잃고, 홀로 가면 벗을 얻느니

중앙선데이 2012.09.23 01:53 289호 10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박용석
안철수 원장이 드디어 공식 출마선언을 했다. 전혀 정치할 것 같지 않은 그가 국민적 열망에 힘입어 대권에 뜻을 둔 지 어언 일 년 만이다. 그에게 기대를 거는 국민이나 그 자신에게나 참으로 오랜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이 초고속 IT 시대에 성질 급한 사람들은 도무지 못할 짓이었다. 장고(長考)의 시간들을 치밀하게 계산하며 달려온 그인들 어찌 편했을꼬? 보통 사람 같으면 피가 말라 진작 때려치웠을 게다. 문제는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할 날들이 남았다는 것이다. 대선까지 석 달도 안 남았는데 이제부터는 단일화 시점과 방법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김종록의 '주역으로 푸는 대선 소설'⑩

“어차피 야권 후보 단일화는 바람을 몰고 오는 거니까 늦으면 늦을수록 파괴력이 크겠죠.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11월 25일, 후보등록일 직전에 극적으로 단일화할 겁니다. 야권의 입장에서는 누구로 단일화가 되느냐에 따라 어렵게 이기느냐, 아쉽게 질 거냐가 결정될 것 같습니다. 지금 여당의 박근혜 후보가 역사관 때문에 주춤하지만 그 내공과 지지층이 막강합니다. 야권으로서는 어느 때보다 이기기 어려운 판세입니다.”

TV 시사토론 프로에 나간 강권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 다른 토론자들도 대체로 동의했다. 어차피 여야 간에, 혹은 세 후보 간에 정책 차이도 별반 다른 게 없었다. 진정성과 능력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더 진정성이 있고 실현할 능력이 있는가는 좀처럼 검증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경제민주화나 전면적 복지, 무상교육이 골자인 정책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경제민주화 같은 건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대선 후에 그 정신이라도 남는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민주당이 쉽사리 혁신할 수 있겠소?

낯익은 야당 국회의원 둘이서 소문을 듣고 백두옹을 찾아왔다.
“백두옹 어르신, 또 한 번 정권교체의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중심 단일화 묘책이 있을까요? 심오한 주역 경전으로 속 시원히 풀어주시죠.”
백두옹은 두 의원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마치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기 위해 추(錐)를 내리는 것 같은 눈길이었다.
“어르신, 섬뜩합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기세 찬 두 의원이 쩔쩔맸다. 그만큼 백두옹의 눈빛은 강렬했다.
“안철수 쪽에서도 와서 똑같이 물을 걸세. 안 후보 중심의 단일화 묘책이 없느냐고? 그럼 내가 뭐라고 해야겠소?”
백두옹이 반문했다.
“우리 쪽엔 우리에게 맞는 답이, 그쪽엔 그쪽에 맞는 답이 있겠지요.”
“허허허, 그런가?”

백두옹은 책상 서랍에서 두 개의 봉투를 꺼냈다. 그중 하나를 건넸다. 전에 경제민주화 얘기하면서 뽑았던 적이 있는 손(損:)의 괘상 그림이 나왔다. 그 아래로 붓펜 글씨 몇 줄이 적혀 있었다.삼인행즉(三人行則) 손일인(損一人)하고, 일인행즉(一人行則) 득기우(得其友)라. 세 사람의 나그네가 길을 가면 한 사람을 잃고, 한 사람이 길을 가면 벗을 얻는다.
“지금 대선 선거판 이야기네요.”
“그런데 대권으로 가는 나그네 길에서 낙오자가 누굴까요? 안철수입니까, 문재인입니까?”
두 국회의원이 자기들끼리 신기해하면서 풀이하고 물었다.
“눈치 9단이라는 정치인들이 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먼.”
백두옹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럼 박근혜 후보가 낙오자라는 겁니까?”
그중 하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백두옹은 눈을 감았다. 노익장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문재인과 안철수, 둘 중 하나가 대통령이 된다는 말씀이로군요!”
두 의원은 잔뜩 고무되어 자기들끼리 손을 맞잡았다. 그러다가,
“그래도 문재인이 되는 방도를 일러주십시오.”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자기 당 사람이 돼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치인들로서는 당연한 욕심이었다.
“바로 말하면 낙오가 아니라 당장 짝을 못 짓는 것뿐이오. 뒤 구절을 잘 보시오. 혼자 길을 가다 보면 벗을 얻는다고 했질 않았던가? 홀로 된 나그네, 박근혜 후보가 만나는 벗이 국민이면 어떡할 거요?”
“당장 짝을 못 짓고 외톨이가 돼도 불리할 건 없다는 말씀이로군요.”
그제야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하는 눈치였다.
“짝을 짓게 되더라도 이른바 궁합이 맞아야지. 주도권을 잡기 위해 티격태격하여 구태의연한 모습을 노출하면 국민은 바로 돌아설 거요. 안철수 후보 측이 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정치혁신과 민주당 내 패권주의 청산을 주문한 이유요. 국민은,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자꾸 문제를 만들고 있어서 걱정이지.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행태가 꼴 보기 싫어서 안철수 후보에게 ‘선물로서의 국가 리더십’을 안긴 거란 말이오. 그런데 그대들 민주당이 쉽사리 혁신할 수 있겠소? 국민이 바라는 만큼으로. 난 어렵다고 봅니다.”

백두옹은 부정적이었다.
“문재인 후보 중심으로 확 뜯어고칠 겁니다.”
두 의원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확 뜯어고치시겠다니 듣기 좋구려. 혁신하면 해답이 그 속에 있소.”
백두옹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신통한 점괘를 속 시원히 뽑으려고 왔는데….”
둘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나는 점치는 사람이 아니오. 설사 점을 친다 해도 제 욕심뿐인 그런 마음 가지고 와서는 어림도 없소.”
백두옹은 그렇게 두 의원을 물리쳤다.

때가 사나웠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한·중·일 삼국에서는 영토 분쟁으로 인한 외교 문제가 발발했다. 세계는 지금 때 아닌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자국 산업 보호주의가 나타났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 코오롱과 듀폰 간 분쟁이 그 예다. 국내적으로도 늘어나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골칫거리였다. 소득의 양극화 현상도 여간해서 풀기 어려운 과제였다. 그런데 기성 정치권을 불신하는 국민들은 이처럼 산적한 경제 문제를 정치인도 경제인도 아닌 제3의 인물을 추대하며 해결해 주기를 원했다. 안철수나 문재인은 그래서 대권 후보가 되었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정부가 필요한 때에 참으로 짓궂은 노릇이다.

백두옹은 한 술 더 떴다. 다음 번 대통령이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고 세계를 선도하는 초석을 다져야 한다는 주문까지 보탰다. 너무 거창한 주문이라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그렇다고 코앞에 닥친 문제 때문에 근시안으로만 살 것인가. 힘겨울 때일수록 가야 할 좌표를 멀리 보고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때일수록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언제까지나 편을 갈라 샅바싸움을 할 것인가. 지금은 상대를 때려눕히고 전리품을 챙기며 좋아할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3만 달러 시대로 바삐 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간 돌보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 성장의 그늘을 챙기면서도 1만 달러 시대로는 퇴보하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러려면 여야, 진보 보수,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지혜를 한데 모아야 한다.

백두옹은 문득 떠오르는 기물이 있어서 외손자며느리를 찾았다. 나머지 봉투 하나는 주머니에 넣은 채로였다.
“우리 바람 좀 쐬러 갔다 오련? 속리산 법주사에.”
“가을 절집 나들이네요. 좋아요. 마침 은강이 아빠도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하니 더덕구이에 도토리묵밥이나 먹고 오죠 뭐.”
세 후보 한데 넣고 크게 삶을 성인은
외손자며느리는 흔쾌히 운전대를 잡았다. 가을 속으로 떠난 그들은 신라 고찰 법주사 뒷마당의 커다란 쇠솥 앞에 섰다. 높이 1.2m, 둘레 10.8m나 되는 천 년 묵은 쇠솥이었다.
“얘야, 밥이건 국이건 이 정도는 되는 솥에다 한가득 해서 수천 명을 거둬 먹이고 싶지 않니?”
백두옹이 똑 부러진 외손자며느리에게 눙친다.
“에고, 전 달랑 식구 서넛 밥하는 것도 힘겨운 걸요.”
“이 솥은 너무 작다.”
“이보다 커서 어따 쓰게요?”
“천하를 삶으려면 이 정도 가지고 되겠어? 솥은 세상만물을 변혁하는 기물이란다. 날고기를 익게 하고 단단한 걸 부드럽게 만들지.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솥을 뜻하는 정(鼎:
) 괘가 혁명을 뜻하는 혁(革:
) 괘 다음에 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혁 괘를 180도 뒤집어놓으면 그 모양이 바로 정 괘란다. 삶으려면 솥에 무엇을 부어야지?”
“당연히 물이지요.”
외손자며느리가 두툼한 솥을 만지며 대답한다.
“그럼 이 밑에는?”
“불을 때야겠죠.”

“물과 불은 상극(相剋)이야. 여야나 보수 진보 이상 가는 정반대적인 성향을 가졌지. 물은 불을 꺼버리고 불은 물을 말려버리거든. 그런데 그 가운데에 솥이라는 매개체가 있으면 만물을 삶아내서 천하 사람들이 먹기 좋게 한단 말이다. 주부나 셰프는 작게 삶아 요리를 하지만 성인(聖人)은 대팽(大烹:크게 삶아)하여 시대를 이끌 대인들을 만들어내지. 지금 이 땅에 어느 성인이 있어서 여야의 세 대권 후보들을 한데 넣고 크게 삶겠느냐.”
“요즘 시대에 성인이 어딨어요? 국민이 삶으면 되는 거죠.”
“어느 국민? 홍군, 황군, 백군으로 갈라진 국민?”
백두옹은 고개를 흔들었다. 시대적 소명이라는 게 있다. 미국의 제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되자 뜻하지 않게 대통령이 된다. 혁신의 시대를 열면서 그는 천명한다.

‘연방정부는 어느 특정 세력의 대변자가 아니다. 바로 공익의 조정자가 되어야만 한다. 또한 대통령은 바로 이런 조정자의 중심인물이 되어야 마땅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리더십은 ‘공익의 조정’이다. 세 대선 후보가 누구와 짝을 잘 지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백두옹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봉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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