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탄광촌이 문화촌으로, 영월군의 변신
![]() |
![]() |
초기엔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 반발
영월군에는 미디어기자박물관 같은 사립 박물관이 17곳이나 된다. 그중 5곳이 올해 문을 열었다. 군에서 운영하는 공립 박물관도 7곳, 모두 24개가 운영 중이다. 지자체당 박물관 수가 평균 1곳이 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 단연 돋보이는 수치다. 박물관 구성도 다채롭다. 조선민화박물관·묵산미술박물관·쾌연재도자미술관·사진박물관 등 미술 관련 박물관이 주축을 이루지만, 호야지리박물관·곤충박물관·화석박물관·동굴생태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박물관들이 있다. 최근에는 곰인형박물관도 문을 열어 관객층을 넓히고 있다.
박선규(55) 영월군수는 “한때 광산도시로 번창하다가 무서운 속도로 쇠락하고 폐허화하는 영월을 살리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며 “기존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관광객들이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데 박물관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인구가 줄면서 학생 수도 줄고, 자연스레 폐교가 자꾸 생겨나던 상황도 역이용했다. 2006년 취임한 박 군수는 “취임 초 민간에서 주도해 폐교를 활용해 만든 박물관이 몇 곳 있었다”며 “큰 시설 투자 없이도 더 발전시키면 군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박물관 사업이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 지역 주민이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박물관이냐’며 반감을 보였다. 이런 여론을 다독이고 바꾸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는 게 박 군수의 얘기다.이제 그 효과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2004년 한 해 31만 명 정도였던 영월 관광객(박물관 및 유료 관광지) 수가 지난해 150만 명으로 늘었다. 박 군수는 “박물관 입장료 수입은 아직 미미하지만 박물관에 온 분들이 모두 영월에서 식사, 숙박, 쇼핑 등을 하며 돈을 쓰고 간다. 경제 유발효과도 상당하다”고 자랑했다. 이어 “박물관 등 문화사업은 경제와 동떨어진 게 아니다. 농업·산업과도 접목될 수 있다. 또 영월이 얻은 브랜드 가치도 만만찮다”고 말했다.
전시 질 높이는 등 내실 다져야
영월군은 현재 24개인 박물관 수를 2015년까지 총 30개로 늘릴 계획이다. 요즘은 박물관 도시로 이름이 나면서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제안들이 빗발쳐 옥석을 가리기 쉽지 않을 정도다. 좋은 제안은 엄선해서 지원을 할 방침이다. 가령 영월군 주천면(酒泉面)의 옛 지명이 ‘술샘’인데, 술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이곳에 술 문화와 관련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게 그 예다.하지만 박물관 증설 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워낙 짧은 시간에 수가 늘어나다 보니 유기적인 연계가 안 되는 등 빈틈도 보인다.
우선 박물관마다 질적 수준이 천차만별인 점이 거슬린다. 대부분의 사립 박물관이 설립자가 평생 모은 자료나 유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설립자의 손을 떠나도 장기적으로 박물관이 생존하려면, 지속적으로 전시의 질을 높이고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영월 책 박물관’ 폐관 사례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영월 책 박물관은 서울 인사동에 있는 고서점 ‘호산방’ 대표 박대헌 관장이 1999년 문을 연 영월군 1호 박물관이다. 당시 쓸모 없이 방치됐던 폐교를 박물관으로 재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도, 제대로 된 박물관이 되려면 자료만 쌓을 게 아니라 세련된 기획·디자인과 홍보를 통해 잠재 관객들의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는 전략도 박 관장이 처음 시도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은 이제 영월에 없다. 2006년 영월군이 책마을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작 책 박물관과 사전 협의가 없었던 점이 계기가 됐다. 당시 박 관장은 박물관을 휴관했고, 이런저런 협의와 갈등이 반복되다가 결국 2010년 폐관했다.
박씨는 “박물관 운영자와 지역사회, 외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문화 생태계의 구성은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영월군의 처사를 비난했다.
미디어기자박물관처럼 최근에 영월에 새로 문을 여는 박물관들이 지역사회와의 관계 맺기에 적극적인 것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올해 5월 문을 연 인도미술박물관도 지역주민과의 교류에 신경을 쓴다. 박물관 터인 옛 금마초등학교 동문들의 연례행사인 가을 운동회도 예전처럼 계속 열 예정이다. 주천면 금마리 이운희(65) 이장은 “박물관 터는 오래전 마을 공회당이었고, 마을 사람들과 자녀들이 다닌 금마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라며 “추억이 어린 곳이 폐허가 되지 않고 깨끗하게 박물관으로 단장돼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