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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힘 앞에서 축은 무얼 할 수 있나

중앙선데이 2012.09.23 00:04 289호 20면 지면보기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주목받는 건축가들이 2년마다 모여 자국의 명예와 실력을 겨루는 무대다. ‘건축계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올해는 8월 29일 시작돼 11월 25일까지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열린다. 알래스카 앵커리지 역사박물관, 바르셀로나 법원 등을 설계한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총감독을 맡아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ㆍ공통의 토대)’라는 주제를 던졌다. “각각의 유행과 의지, 문화적 형태로 흘러가는 건축이 갖고 있는 공통된 가치를 찾아 이를 공유하자”는 게 그의 의도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자연환경과 문화권에서 탄생한 건축물에서 공통의 가치를 찾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건축가들은 다소 추상적인 이 주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관람객들과의 소통을 도모했다.

2012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참관기

올해의 주제는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
행사는 크게 주제전과 국가전으로 나뉜다. 세계 톱클래스 건축가들이 초청받는 주제전에는 올해 69명이 초청됐다. 한국 건축가로는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유일하게 참여했다. 건축물을 전시장으로 옮겨오지 않는 이상, 건축물이 전하는 감동을 전시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건축가들은 그림과 사진·영상·설치작품 등을 총동원했다. 이름을 가리면 건축 전시인지 미술 전시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다. 스위스 건축가 피터 뫼르킬리는 텅 빈 전시장 안에 깡마른 인물조각상 5개만 띄엄띄엄 설치해놨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게이트웨이(Gateway)’라는 주제로 빔프로젝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건축가들의 이름이 검은 방의 벽과 바닥을 빠르게 떠다니도록 했다. 이라크 출신의 여성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자신이 설계한 건물들의 지붕 모양을 조각으로 만들어 천장에 매달았다. 또 새 프로젝트로 야자수 모양의 조형물 ‘아룸(Arum)’을 소개했다.

주제전 참가작가 중 최우수팀에 수여되는 황금사자상은 영국 건축가 그룹 어번 싱크 탱크(Urban-Think Tank)와 베네수엘라 저스틴 맥궈크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주제전이 진행되는 아르세날레 전시관 한가운데 카페를 차리고, 건축 관련 사진 40여 점과 10여 대의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물로 카페를 채웠다. 이들이 테마로 잡은 것은 베네수엘라 코르드리 지역에 있는 45층짜리 미완성 건물. 공사가 중단돼 흉물로 방치된 이 건물에 도시 빈민들이 들어가 주거공간과 카페 등을 차렸다. 이들은 이 건물이 가진 독특한 공공성에 주목해 상을 받았지만, 이들의 수상에 대해 ‘건축가 없는 건축’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쓰나미로 죽은 나무 베어 전시관 기둥 제작
섬 남동쪽 자르디니 공원에는 26개의 상설 국가관이 있다. 한국은 26개국 중 마지막으로 1995년 공원 한쪽 언덕에 230여㎡의 국가관을 마련했다. 올해 국가관을 차린 나라는 총 55개국. 상설 국가관이 없는 나라들은 주제전이 열리고 있는 아르세날레나 베니스 곳곳의 건물을 빌려 임시 전시장을 차린다. 올해 국가관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테마는 환경. 독일관은 ‘리듀스, 리유즈, 리사이클(Reduce, Reuse, Recycle)’을 내세워 건축이 자원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묻는 16개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덴마크는 ‘가능한 그린란드(Possible Greenland)’를 테마로 지구온난화로 급격히 축소돼 가는 그린란드 문제를 제기했다.

도시개발 문제 역시 세계가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였다. 프랑스관은 파리 변두리에 건설되고 있는 대형 주거타운 개발계획을 조명했다. 벽면과 바닥에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을 띄워 관람객들이 도시화의 속도를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나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국가도 많았다. 캐나다는 전시관 외부와 내부 전체를 통나무로 채웠다. 핀란드관은 ‘나무의 새로운 형태(New Forms in Wood)’라는 테마로 나무를 이용해 독창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을 소개했다. 한국관에도 한옥의 문살을 모티브로 한 소나무 틀이 세워졌다. 가장 뛰어난 국가관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일본관의 주제는 ‘여기서 건축은 가능한가-모두의 집(Architecture, Possible here? Home-for-All)’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이토 도요(伊東豊雄)가 커미셔너를 맡은 일본관은 지난해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인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에서 진행 중인 건축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쓰나미로 염해 피해를 본 나무를 베어 와 전시관 기둥으로 이용했다. 이토는 “자연의 힘 앞에서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QR코드·영상 총동원해 소통
각 나라는 자국의 건축문화를 알리기 위해 독특한 컨셉트와 기발한 구성, 각종 미디어를 총동원했다. ‘건축을 걷다(Walk in Architecture)’라는 주제로 진행된 한국관 역시 건축전시에 주로 쓰이는 모형과 사진을 배제하고 영상만으로 전시관을 꾸몄다. 관객과 소통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방식을 도입한 국가도 많았다. 미국관의 경우 건축물들의 사진과 설명이 적힌 커다란 휘장들을 천장에서 늘어뜨려 관객들이 이를 잡아당겨 읽도록 했다.

모스크바 인근의 스콜코보시를 전자도시인 ‘아이 시티(i-city)’로 개발하는 계획을 테마로 한 러시아관은 주제에 맞게 첨단기술을 적극 활용했다. 전시실의 바닥과 벽, 천장을 QR 코드로 가득 채운 후 관람객들이 아이패드로 이를 찍어 전시 관련 자료를 받아 볼 수 있게 했다. ‘모델-숲(model-forest)’을 컨셉트로 내세운 헝가리관은 화려한 색상이 사용된 건축물 모형으로 전시관 내부를 촘촘히 채워 숲 속을 거닐 듯 건축물 모형 사이를 산책할 수 있도록 꾸몄다. 전시를 관람한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건축계의 가장 큰 행사인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총동원됐다”며 “우리 건축가들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전시방법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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