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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필요해요, 빈집 …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중앙일보 2012.09.20 01:02 종합 27면 지면보기
소설가 김인숙의 황순원문학상 수상은 의미가 각별하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작가로 데뷔시켜준 이가 황순원 선생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9년을 돌아 다시 황순원(1915~2000) 선생 앞에 섰다. 올해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김인숙(49)은 수상 인터뷰에서 “황 선생님 덕에 작가가 됐다”고 했다.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을 때 심사위원이 황순원·전광용(1919~88)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에 소설가가 됐다는 통보를 받은 어린 작가는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황 선생의 댁을 찾아갔다. 당시 전 선생이 “통속작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경계할 것을 요구했다면, 황 선생은 모진 말씀 없이 인자하게 그를 맞아주셨다고 했다.

수상작 ‘빈집’ -소설가 김인숙



 “어느 신문에선 ‘그 해 등단한 작품 중 가장 문장이 형편없다’고 평가받기도 했어요. 만약 제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제 작품을 뽑았을까 싶어요. 문장에 치기가 있었고, 결함이 많은 작품이었으니까요.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신 거죠. 이제 와서 제가 황순원문학상을 받는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김인숙은 ‘통속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을 잠재우고, 30년 가까이 본격문학을 써왔다. 지난해 중앙대 계약직 교수를 맡은 게 생전 처음 시작한 부업이었다. 글만 써서 밥벌이를 하는 게 모든 글 쓰는 이들의 로망이라면, 그는 그 꿈을 현실로 살아온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미련할 정도로 다른 일을 할 줄 몰랐어요. 글을 써야 먹고 살 수 있으니, 정말 꾸준히 썼던 것 같아요. 1년에 단편 1~2편은 발표했으니까요.”



 소설을 쓰면서 괴롭고 내팽개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그때마다 상복이 생겼다. 그러니 또 부채의식을 갖고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



 “되도록이면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획기적으로 다른 세계를 구축할 순 없어요. 조금이라도 변화를 하려는 거죠. 젊은 작가들을 보면서 불타는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고요. 편혜영·윤성희·김중혁 등의 작품을 보며 ‘이렇게 잘 쓴단 말이야’라고 자극을 받죠.”



 이번 수상 소식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여든아홉의 어머니였다. 문학상 시상식 때마다 동석했던 어머니는 11월 15일 열릴 이번 시상식엔 함께하지 못한다.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사의 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늙은 엄마한테 이 나이에 ‘착하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께 다시 한번 수상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수상작 ‘빈집’은 아내 몰래 ‘자기만의 집’을 갖고 있는 남편의 이야기다. 아내의 시각에서 27년 동안 결혼생활을 반추하는 내용이 중심이야기다. 이삿짐을 나르는 남편은 소심한 성격이었고, 생활은 늘 쪼들렸지만 남편을 사랑했기에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



 반전은 마지막 두 페이지였다. 비밀이라곤 없을 것 같은 남편이 사실은 경북 영천에 ‘빈집’을 두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놓고 있었다. 허물어져가는 폐가에는 이삿짐을 날라주던 젊은 여성들의 집 열쇠가 나란히 걸려있다. 남편은 신(神)도 존재하지 않는 그만의 공간에서 분주히 자신의 세계를 키워 나간다.



 심사위원들이 치열하게 논쟁했던 부분은 ‘열쇠’였다. 남편이 왜 젊은 여성들의 열쇠를 모으고 있었냐는 거다. 여성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을 죽였는지, 아니면 그저 열쇠만 모아 놓고 있었는지에 대한 불명확성이었다.



 “열쇠는 불온한 욕망입니다. 처음에는 실수로 열쇠 하나를 수중에 넣었겠죠. 그리고 아마 하나 둘 복제를 했을 거예요. 살인을 하거나 열쇠를 사용하진 않았을 거예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의 마지노선에서 슬픔이 있는 거죠.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빈 집이에요. 공포영화를 보더라도 시체가 보이는 것보다 텅 비어있는 것이 더 무섭고 슬프고 허망하잖아요.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빈집’이 있는 영천은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에서 따온 것이다. 어머니가 영천시장 옆에서 하숙집을 운영했는데 그곳에서 열일곱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다. 지금은 주변건물이 재개발되면서 섬처럼 남겨졌다. 5년 전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는, 여러 사람이 건물을 분할해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남루한 것이 소설 속의 영천 집과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남편의 ‘빈집’은 작가의 ‘빈집’ 인 듯싶다.



 “제게도 ‘빈집’은 필요하죠. 집에 앉아서 ‘집에 가고 싶다’는 혼잣말을 가끔 해요. 제게 빈집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외부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차단돼 있고, 무엇을 꿈꾸더라도 아무도 탓하지 않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는 소설 말미에 ‘영천 집에 머물 때마다 보름달이 환했다.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고독을 가진 남자의 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라고 썼다. ‘빈집’이 그랬던 것처럼 고독은 그의 영원한 주제다.



 “외롭지 않나요? 애인이 없거나, 가족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고, 우리 존재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외로움이 있잖아요. 소설을 쓰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외로움이더라고요. 그 고독을 긍정하는 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외로울 수밖에 없으니, 외롭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며 사는 거죠.”



 이제는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중견작가가 됐지만, 소설가로서의 삶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데뷔한 이후 처음 5~6년 동안 문단에 편입되지 못했다. 80년대에 젊은이들의 성을 다룬 그의 등단작 ‘상실의 계절’은 공격받기 좋은 소재였다. 오죽했으면 ‘20대 미모의 명문대 출신의 여류작가가 성(性)을 다룬 소설로 등단했다’며 선데이서울에 기사가 실렸다. 김인숙이 80년대를 대표하는 운동권 작가가 된 것은 처음 5~6년의 절치부심 때문이었다.



 “저는 얼떨결에 등단을 했기 때문에 등단 후에 작법을 배웠어요. 등단작으로 욕을 많이 먹어서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언젠가 좋은 작가가 돼 모욕을 다 갚아주겠다. 이를 악물었네요. 어쩌면 황순원 선생님이 어린 나이에 저를 뽑아주신 게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변모해나갔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딸과 함께 중국에 가서 살기도 했지만 그의 소설은 인생의 극적인 순간에서 솟아나지 않았다. 소설은 일상에서 나왔고, 그래서 ‘나이를 먹는 일’이 그에겐 중요한 이슈였다.



 “어느 평론가는 제 소설이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다 다르다고 해요. 특정 사건 때문에 제 소설이 변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저 생활인이 되었을 때, 엄마 노릇을 해야 할 때, 아이가 다 커서 나이 드는 것을 준비해야 할 때, 그 시기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세가 변할 뿐이죠.”



 2012년 지금, 쉰을 바라보는 김인숙의 시선은 어디에 닿아있을까. 작가는 그 동안 공고히 쌓아놓은 틀을 깨버리고 싶어한다. 지금 최고의 관심사는 장르문학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의 불안과 공포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스릴러와 시공간이 확장되는 판타지를 쓰고 싶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빈집’도 그런 맥락이었다.



 “요즘 소망이라면 새로 쓴 소설이 장르문학 분류에 들어가있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 새로운 인생이 열리게 될 것 같아요. 아무리 버둥거려도 쉽게 변하지는 않겠죠. 제 소설과 판타지, 스릴러는 너무너무 다르잖아요. 그들이 만났을 때 어떤 것이 될까, 그런 궁금함이 있어요.”



◆김인숙=1963년 서울 출생.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한국일보문학상·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대산문학상·동인문학상 등 수상. 소설집 『칼날과 사랑』 『그 여자의 자서전』 『안녕, 엘레나』. 장편소설 『봉지』 『소현』 『미칠 수 있겠니』 등.



[황순원문학상 심사평]



우리 모두는 영원한 타인 … 독자는 반전에 전율했다




황순원문학상 본심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이승우·신수정·윤성희·최원식·구효서씨. [김성룡 기자]
후보작 중 하나인 김중혁의 ‘요요’가 올해의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됨으로써 본심 대상작은 자연스럽게 그를 제외한 아홉 편이 되었다. 그러나 한강·편혜영·김숨·김인숙 등의 작품으로 논의가 모아지기까지는 거듭된 토의가 필요했다. 후보작들의 역량과 개성이 고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각각의 작품 모두 완전히 납득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없지 않았던 탓도 클 것이다.



 한강의 ‘에우로파’는 ‘목성’과 그것의 위성인 ‘에우로파’의 메타포를 이용해 두 남녀의 영원히 합치될 수 없는 존재론적인 거리를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때로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나르시즘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반면 편혜영의 ‘블랙 아웃’은 시종일관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정작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전쟁이나 생화학 테러, 지진 등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생산해내는 권력의 속성임을 역설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다만 메시지가 너무 두드러진 나머지 날것의 정보가 노출된다는 점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수상작과 경합을 벌인 작품은 김숨의 ‘옥천 가는 날’이었다. 운구차를 타고서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어머니와 두 딸의 이야기가 때로는 수다처럼, 또 때로는 시처럼 생생하면서도 애잔하게 펼쳐지고 있는 이 작품은 삶과 죽음, 가족과 개인 등 소설 본연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대목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금붕어의 상징이 모호하고 플롯이 다소 밋밋하다는 점이 걸렸다.



 수상작으로 결정된 김인숙의 ‘빈집’은 27년을 살아온 부부의 회고를 통해 각자의 삶에 내재해 있는 ‘빈집’에 대한 사유를 풍성하게 부풀리고 있는 역작이다. 아내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서사가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남편의 시점으로 바뀌면서 독자들은 가깝디가까운 아내마저 짐작하지 못했던 남편의 내밀한 우주를 엿봄으로써 그 반전에 전율하게 된다. 결말의 모호함과 추리소설의 외양이 거슬린다는 지적을 넘어, 김인숙은 어떤 타인과도 공유할 수 없는 우리들 모두의 ‘완전한 공백’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영원한 타인이다.



◆심사위원=구효서·신수정·윤성희·이승우·최원식(대표집필 신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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