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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우리 내면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중앙일보 2012.09.20 00:17 종합 36면 지면보기
김기택
시인
“너희는 내 머릿속에 암 덩어리를 집어넣었고 내 심장을 테러했으며 내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 한다.”



“너희가 내게 했던 모든 빌어먹을 짓을 이제 총으로 갚아주겠다.”



5년여 전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의 학생과 교수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의 범인 조승희는 방송국에 동영상과 글을 보내 세상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마음으로 증오와 분노를 너무 오랫동안 굴려 총알처럼 단단해진 말이었다.



처음 그 글을 보았을 때 의외로 문학적인 데다 내 청년기의 습작시도 떠올라 몹시 당혹스러웠다. 나도 습작기에는 내성적이어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내면에서 열등감과 증오를 키워 시에 담으려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승희는 10분 동안 30명이나 죽이면서도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해 세상을 경악시켰다. 미리 건물의 입구를 쇠사슬로 봉쇄하고 표정의 변화 없이 일일이 희생자들을 조준해 세 발씩 쏘았다. 그가 그토록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살인 연습을 해 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은 조롱과 굴욕으로 세상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면서 마음으로 살인의 리허설을 수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말이 거의 없었으며 말을 하더라도 한두 단어에 그쳤다고 한다. 중·고교 시절 왕따를 당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은 더욱 폐쇄적이 됐으며, 끝내 타인과 소통을 차단하고 내면에 갇혀 살게 됐던 것이다. 뒤늦게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문학으로 치유하기에는 내면의 훼손이 너무 컸던 것 같다. 교수들은 소통을 거부하는 그의 태도가 문학을 향한 간절한 요구가 아니라 심각한 정신질환임을 알아채고 정신과 치료를 요구했다.



문학의 언어는 개인 내면의 언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타인의 언어, 사회의 언어와 결합하면서 자신을 치유하는 언어다. 그러나 그의 언어에는 타인과 사회는 없고 오로지 자기만 있었다. 그가 소리친 말은 내면에서 발효되면서 익은 시어가 아니라 증오로 압축시킨 화약이었다. 소통이 막힌 내면은 끔찍한 괴물로 변해갔던 것이다.



 최근 검거된 울산 자매 살인사건의 범인도 자기 내면에 갇혀 사는 외톨이였다. 출구가 막힌 말과 욕망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묻지마 살인과 아동 성범죄, 왕따,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 먹고살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살벌해지는 데다 사람들의 소통을 빨아들이는 인터넷이나 전자오락의 기술은 더욱 강력해져 개인의 내면은 더 황폐해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내면에서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말들은 갈 곳이 거의 없다. 현대인은 문명과 언어에 갇혀 자연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



 문학은, 시는 이 소외로부터 벗어나려는 내면적인 몸부림이다. 현대인이 늘 의존하는 언어는 반쪽짜리 소통이다. 언어는 인간만이 알아듣고 인간 이외의 자연과 사물은 알아듣지 못한다. 언어는 머리만 사용하고 오감이나 감정이나 정서가 있는 몸은 소외시킨다. ‘사과’라고 말해보라. 실제 사과의 촉감과 미각과 모든 느낌은 소외되고 사과라는 언어만 남는다. ‘슬픔’이라고 말하는 순간 몸에서 일어나는 유일무이하고 고유한 몸의 사건, 내면의 사건은 소외되고 개념이고 정보인 언어만 남는다. 이런 언어생활을 죽을 때까지 하면 몸과 마음은 자연과 타인과 자신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는 마비에 이를 것이다.



 시는 자연과 타인과 자아와 온몸으로 소통함으로써 이 마비를 깨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시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소외당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시가 먼저 느끼고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인의 내면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조승희의 그것과 닮은 괴물이 적지 않게 보일지 모른다. 갈 곳 없는 이 괴물을 시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벌어지고 있는 범죄와 왕따와 자살의 잠재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다. 주변의 불행이 나의 일이고 나의 짓이며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야 할 것이다.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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