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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청소년에게 술 파는 대형마트

중앙일보 2012.09.20 00:16 종합 37면 지면보기
윤창희
사회부문기자
미국 연수 시절 집 근처 마트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사곤 했다. 계산을 할 때마다 점원들은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기자가 마흔이 넘은 것을 확인한 점원은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며 머쓱해했다.



 성가시기도 해 한 번은 점원에게 직접 따졌다. “번번이 신분증(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는 이유가 뭐냐?” 그의 답변은 이랬다. “애매할 때는 확인하라는 게 주법(州法)이다. 문제가 되면 나는 경찰에 체포(arrest)된다.” 술 판매에 엄격한 미국의 모습이다.



 서울시가 18일 발표한 대형마트의 청소년 술 판매 실태는 심각하다. 서울시내 대형마트 63곳의 주류 판매 현황을 조사한 결과 65%가 청소년에게 술을 팔고 있었다. 이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 있다. 서울시는 술 판매 실태를 시간대를 달리해 업소당 세 차례 점검했다. 그 결과 적발률은 평일 낮(76%)이 주말(65%)이나 평일 저녁(54%)보다 높았다.



 그동안 대형마트들은 다른 고객들의 대기 시간이 늘어나 성인 확인 과정을 종종 생략한다는 이유를 대왔다. 이런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단속 결과 손님이 북적거리는 주말보다 오히려 한가한 평일 낮에 청소년들이 더 쉽게 술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부모 동의를 받고 단속에 참여했던 고교생 김모(18)군은 “낮에는 지켜보는 사람이 적어 점원들이 더 쉽게 청소년에게 술을 파는 것 같았다”고 했다. 대형마트들이 청소년 보호에 얼마나 무감각하고 무성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술을 팔 때 청소년으로 의심되면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은 청소년보호법에 규정된 법적 의무다. 하지만 이런 법 절차를 지킨 비율은 절반 미만이었다. 적발률이 높았던 홈플러스는 이 비율이 38%에 불과했다.



 업체 주장대로 고객이 북적거리고 물건을 대량 구매하는 마트 특성상 성인 확인을 하는 게 번거로울 수도 있다. 현실이 그렇다고 법을 어길 수는 없다. 차라리 주류 판매 자체를 포기하는 게 옳다. 미국에서도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는 술을 거의 팔지 않는다. 특히 일정 도수 이상은 주류전문점에서만 판매한다.



 선진국이 술을 엄격히 통제하는 것은 청소년 음주가 당사자는 물론 가정과 사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수북이 쌓인 술을 청소년이 쉽게 사가는 장면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돈 벌기에 급급해 무신경하게 청소년에게 술을 파는 것은 우리의 ‘미래’에 독배를 권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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