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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유신 본당 손잡았던 DJ

중앙일보 2012.09.20 00:13 종합 38면 지면보기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설마 했다. 용광로가 되겠다던 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전직 대통령 순례를 긍정 평가했던 이가, 김대중(DJ) 대통령 묘역만 찾는다고 해서 말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실제로 DJ 묘역만 찾았을 땐 아쉬웠다. 그래도 “경선 중 아니냐”는 주변의 해명에 수긍하긴 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둔 호남 구애 행보일 수 있어서다.



 문 후보가 그러나 다음 날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피해자가 잊는다고 해서 (통합이) 되겠느냐. 과거 군부 독재, 권력을 뒷받침했던 공화당·민정당이 이름을 바꿔 지금의 새누리당 아니냐”라고 큰 소리치는 걸 보곤 씁쓸했다. 1990년대 말부터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 후보 사이에 얽힌 인연들이 떠올랐다.



 다 알다시피 DJ는 ‘유신 본당’인 JP(김종필)와 손잡았다. 5·16 쿠데타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인 TJ(박태준)도 함께였다. 임기 5년 중의 대부분이랄 수 있는 4년4개월간 총리가 JP와 TJ, 그리고 민정당 출신 이한동이었다.



 DJ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근대화가 꿈만 같았을 때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공로가 지대했고 그것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명예회장도 맡았다. 퇴임 후인 2004년 박 후보가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를 보고 고생한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하자 “과거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다”고 했었다.



 노 전 대통령도 한때 박 후보를 잘 봤다. 후보 시절인 2002년 “확실한 원칙을 보여 호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듬해 조각(組閣) 때 반대 당 소속인 박 후보에게 통일부 장관이 되어 달라고 타진하기까지 했다. 대북 특사설도 끊이질 않았다.



 둘 사이가 멀어진 건 2004년 중반부터다. 박 후보가 깐깐한 야당 대표로 떠오른 후다. 과거사 드라이브가 걸렸다.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백방으로 했다”는 정수장학회 문제도 그때 재론됐다. 인혁당 재심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지금 정치적 전선은 과거 유신으로 돌아갈 거냐, 아니면 미래로 갈 거냐”라고 규정했다. 열린우리당은 박 후보를 “유신 공주”라고 조롱했다.



 1년 후엔 또 달라졌다. 그해 가을 노 전 대통령은 박 후보에게 대연정을 하자고 했다. “국정을 다 한나라당이 맡아도 국정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실상 공동정부의 총리직을 제안한 거다.



 요즘 궁금한 건 이거다. 유신 세력을 중용한 건 DJ였고, 박 후보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건 노 전 대통령이다. 문 후보가 DJ 시절은 몰라도 노 전 대통령 시절은 잘 알 거다. 문 후보는 그런데도 새삼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 독재의 뿌리를 잇는 정치세력이 지금까지도 이 땅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지 않느냐”고 분노한다.



 박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의 딸인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유신 독재가 끝난 게 32년 전이니 그 이후 더 책임질 일이 생겼을 리도 만무하다. 과거엔 ‘과거’를 문제 삼지 않더니, 아니 함께 일하자고 하더니 이제 등 돌리는 이유는 뭔가. 5·16과 유신의 핵심 당사자들과 손잡으면서, 박 후보에 대해서는 ‘박정희의 딸’이란 이유만으로 얼굴을 붉히는 것은 또 뭔가. 행여 ‘우리와 함께한 세력만 선(善)’이란 편협함 때문인가.



 박 후보가 아버지의 유산을 토양 삼아 성장했으니 선친의 통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옳다. 국가지도자로서 역사 인식 부족을 질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요구하는 쪽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때 그때 달라서야 누가 신뢰하겠는가.



 다시 DJ의 말이다. 2005년과 2006년 박 전 대통령과 박 후보를 향해 한 얘기다. “이해할 건 이해하고 평가할 건 평가하고 특히 이 세상에 안 계신 분에 대해선 예의를 갖고 평가해야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이다”, “선친이 못한 지역화합을 위해 열심히 하라. 나라를 위해 큰 포부를 갖고 잘해보라.”



 문 후보는 DJ·노무현 두 사람의 역사 위에 서 있다고 했다. 분명한 건 역사관에서 그는 DJ의 계승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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