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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아시아로 돌아온 미국

중앙일보 2012.09.20 00:12 종합 39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아시아를 순방 중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세 번째 아시아 순방이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으로 두 나라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패네타 장관이 일본을 거쳐 중국을 돌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아시아·태평양 6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기가 무섭게 이번엔 국방장관이 아시아 순방의 바통을 넘겨받은 것이다.



 2009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클린턴은 아시아를 열 번이나 돌았다. 역대 미 국무장관 중 아시아 순방 최다 기록이다. 클린턴과 안 만나본 아시아 국가 정상이나 외교장관이 드물 정도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회귀’를 공식 선언했다. 스스로 미국 최초의 ‘태평양 대통령’을 자임했다. 이후 미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은 아시아를 안방 드나들듯 하고 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미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였다. 막대한 돈과 인력을 두 나라에 쏟아부었다. 중동과 서남아 원정이 ‘상처뿐인 승리’로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두 나라에 전개했던 전력의 상당 부분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옮기고 있다.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 지역에서 부상하는 중국에 맞서 미국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군사적 포석임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회귀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편할 리 없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중앙글로벌 포럼에서 중국 측 참가자들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 봉쇄가 미국의 궁극적 의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성 출신으로 중국개혁포럼 선임고문을 맡고 있는 판젠창은 “미국이 한국·일본·호주 등 동맹국과의 결속을 강화하고, 해·공군력을 중심으로 대(對)아시아 전력 증강에 나서고 있는 것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 자신의 책임을 무시한 일방적 주장이라는 게 미국 쪽 시각이다. 마틴 패클러 뉴욕타임스 도쿄지국장은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회귀를 원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필리핀과 베트남이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예라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중국의 공세적 부상이라는 반박이다.



 중국은 1948년 일방적으로 설정한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nine dash line)을 근거로 남중국해의 80%가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주장대로라면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 중인 파라셀 군도와 동남아 5개국과 분쟁 중인 스프래틀리 군도 전부가 중국의 관할권에 들어간다. 이를 근거로 중국은 당사국 간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백령도 앞까지 EEZ 경계선을 그어놓고 개발 이익을 공유하자고 한국에 협상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여 중국 견제 대열에 동참시키면서도 대중(對中) 봉쇄 의도가 없다고 중국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사실상 아세안 국가들과 일본 편을 들고, 미사일 방어용 레이더 기지를 일본 열도에 설치하면서도 대중 포위 전략은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이율배반적 행보의 선의를 중국에 납득시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에 가깝다. 자칫 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불화를 부추긴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아시아에 개입할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아시아 국가 간 갈등을 방조하고 있을 가능성을 중국은 의심하고 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에 따른다면 쇠퇴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냉전 시절처럼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들을 일방적으로 끌고 갈 순 없다. 냉전 시절에는 존재가 미미했던 중국이 지금은 아시아의 확실한 패권 세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세력균형이 흔들리는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다. 한국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나라들로서는 최대한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 분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서 의미 있는 신호를 읽으려 할 것이다. 미국은 독도 영유권 논란의 근원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에 대한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그런데도 미국이 “입장이 없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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