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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거래처에 같은 값으로 공급 … 신뢰 쌓아

중앙일보 2012.09.17 03:00 경제 6면 지면보기
정우·능원금속은 냉난방과 가스·수도용 구리파이프 이음쇠 분야 국내 1위 업체다. 가운데 T자형 이음쇠 안에 얼굴 보이는 이가 이 회사를 일으킨 이광원 회장이다. [김성룡 기자]


한 달에 1억원어치를 사가든, 500만원어치를 사가든 거래처에 똑같은 값에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가 있다. 구리(동·銅)파이프 및 파이프 이음쇠 제조업체 정우금속·능원금속이다. 이렇게 한다면 많이 사는 쪽이 불만을 가질 법하다. 그럴 때면 정우·능원금속의 이광원(63) 회장은 이렇게 설득했다.

중견기업 파워리더④ 이광원 정우금속·능원금속 회장



 “당신에게 제품을 더 싸게 주면 작은 업체는 중국산처럼 더 싼 물건을 취급하려 할 것이다. 출혈 경쟁이 시작되면 모두가 손해다. 대신 당신처럼 규모가 큰 곳은 작은 업체가 취급하지 못하는 제품까지 구색을 갖춰 고객을 잡으면 되지 않겠나.”



 대형 업체를 이렇게 설득하는 한편으로 공급 가격을 똑같이 함으로써 작은 업체들과 신뢰를 쌓았다. 신뢰는 경기가 안 좋을 때 보답으로 돌아왔다. 가격이 요동치고, 경기가 안 좋을 때 작은 거래처는 버팀목이 되어 줬다. 거래처 다양화로 위험을 감소시키는 전략이다. 이 회장은 “작은 업체들과 더불어 감으로써 오래, 멀리 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지난해 화두로 떠오른 ‘동반성장’을 이 중견기업가는 일찌감치 체득해 시행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회장은 서울 영등포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솔직히 공부는 잘 못했고, 운동하는 것과 충무로·명동에서 멋 부리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털어놨다.



 월남전에 자원해 참전한 뒤인 1970년대 초반, 친구 소개로 동 관련 제조업체에 입사했다. 동에 관한 지식이 없다는 게 오히려 자산이 됐다고 했다. “동은 엿 바꿀 때 좀 많이 준다는 정도 상식밖에 없었어요. 모르니까 열심히 물어보고 밤을 새워서 공부했습니다.” 한 달 판매량을 5t에서 15t으로 늘렸고, 부장까지 고속 승진했다.





 그 와중에 창업을 결심했다. 도·소매상으로 청계천을 누비다가 대기업의 협력회사로 동관이음쇠 제조에 뛰어들었다. 79년 정우금속이 탄생했다. 사업이 크면서 86년 능원금속을 세워 동파이프까지 직접 만들었다. 특유의 ‘작은 거래처를 살피는’ 전략으로 국내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때부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성장에 한계가 닥쳤다. 그래서 수출로 눈을 돌린 게 80년대 중반이었다.



 외국 회사를 찾아갔을 때 처음엔 문전박대를 당했다. 꾸준히 국내로 초청해 제품 개발과 시설 투자를 보여주자 몇 년 만에 첫 주문이 들어왔다. 90년대 초반 매출액이 300억원일 때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에만 200억원을 쏟은 적도 있었다. 지금은 두 회사 모두 매출액의 절반이 수출에서 나온다. 덕분에 국내 건설경기가 4분의 1 토막이 난 최악의 요즘 상황에도 두 회사는 성장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는 부도 위기에 직면한 적도 있다. 원화 가치가 급속히 떨어져 원자재 수입 대금이 두 배 이상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거래처를 찾아갔다. “제품을 공급해 줄테니, 현금 받고 팔아서 바로 내게 입금해 달라.” 당시 경쟁사들은 제품을 안 팔았다. 원자재를 쥐고만 있어도 가격이 절로 올랐기 때문이다. 거래처들은 제품이 없어 아우성이었다. 이렇게 현금 거래를 한 덕에 살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98년 매출은 전년의 2.4배로 늘었다. ‘작은 거래처를 챙기는’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이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 회장은 요즘 들어 후회하는 게 하나 있다고 했다. 사람을 제대로 못 키웠다는 점이다. “유명대학 경영학 교수와 대기업 임원 출신 등 20명가량을 영입해 봤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제안하는 전략의 눈높이가 우리 회사와 안 맞는 점이 많더군요. 자신들의 이론에 회사를 맞추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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