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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주·허브잎술 은은한 향기에 스트레스가 싹~

중앙일보 2012.09.17 02:56 건강한 당신 9면 지면보기
이강주가 담긴 술 항아리. 이강주를 증류한 뒤에는 배·생강·계피·울금·꿀 등을 넣어 향기를 강화시킨다. 알싸한 알코올과 울금향이 난다.


향기 없는 명주는 없다. 와인은 포도 원료에서 나는 향을 아로마라고 부르고, 발효 과정의 효모나 오크통이 작용해 나는 향을 부케라고 한다. 향이 복잡하고 풍부할수록 고급 와인으로 취급한다. 술을 평가할 때 눈으로 색을 가늠하고, 코로 향기를 맡고 나서 입에 머금고 맛을 보는 이유다. 인간의 기억 중추에 가장 오랫동안 남는 게 향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술 중에서 향을 즐길 수 있는 술이 과연 있을까. 안타깝지만 우리 술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향기다. 약효나 기능성에 집착해서인지 도통 향기를 살린 술을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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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싸한 울금향 아릿하게 남는 이강주



이강주의 조정형 대표가 소주 고리를 이용해 이강주의 증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라북도에는 향이 있는 술이 있다.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전주 막걸리가 큰 명성을 얻었지만, 본디 전주를 대표하는 술은 이강주다. 전주시 덕진구 원동에 있는 이강주 제조장을 찾아갔다. 1991년에 제조 면허를 내고 93년에 원동에 터를 잡았으니 이강주의 연륜도 이제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다. 이강주의 조정형 대표는 나를 숙성실로 데려가더니, 배가 들어 있는 발효 항아리를 보여줬다. 조 대표가 건넨 이강주 한 잔을 입안에 머금으니 계피와 생강의 활달한 기운에 여린 배꽃 향이 실려 왔다. 한 모금 넘기고 나니 알싸한 알코올과 울금향이 아릿하게 남았다.



 이강주는 발효할 때 멥쌀과 밀 외에도 향이 풍부한 보리를 넣고, 증류한 뒤에는 배·생강·계피·울금·꿀을 넣어 향기를 강화시킨다. 그 향기는 한순간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후각세포와 후각신경을 통해 대뇌까지 전달된다. 신경을 진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향기요법(아로마 테라피)의 영역으로 이강주가 들어와 있는 듯하다.



 향기를 잘 살린 술로 지리산 바래봉 아랫마을, 남원시 운봉읍의 운봉주조에서 만든 참동이 허브잎술이 있다. 최봉호 대표는 남원이 허브산업특구로 지정돼 있어서 허브제품 개발을 시작했는데, 허브 향과 맛을 잡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향을 위해 고민하면서 그가 터득한 것은 “소비자가 입에서 나는 향보다 코로 느끼는 향을 좋아하고, 첫 향보다 오래 남는 잔향을 더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참동이 허브잎술은 로즈메리와 라벤다가 들어가 은은한 향이 풍기는데, 이강주에 들어가는 울금도 들어 있어 맛의 짜임새가 있었다. 로즈메리는 뇌를 자극해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라벤더는 심신 안정과 치유 효능이 있다.



오크통 즐비한 무주 머루와인 동굴



전북은 2011년 우리술품평회에서 경기도 다음으로 많은 입상작을 배출했다. 8개 주종에서 각기 주어지는 대상을 3개나 차지했다. 생막걸리 부문 대상은 참동이 허브잎술, 리큐르 부문 대상은 이강주, 과실주 부문 대상은 무주칠연양조의 붉은 진주가 차지했다. 고창 복분자·무주 머루·부안 오디·진안 홍삼의 명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역 농특산품과 술이 잘 연결돼 있다.



 그중에서 무주 머루와인인 붉은 진주의 대상 수상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주에는 머루주 양조장이 5개 있다. 이들 머루주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주 와인동굴 덕분이다. 적상산 양수발전소의 터널을 와인동굴이라는 관광지로 개발해낸 주체는 무주군청이었다. 무주 와인동굴을 이끌어온 박희랑 무주군청 마케팅 팀장에 따르면 2011년 25만 명의 관광객이 와인동굴을 방문해 11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대부분이 머루와인에서 올린 것이라고 한다. 박 팀장은 5개의 와인이 머루와인 동굴에서 시음회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만나면서 단골 고객을 만들고, 품질 경쟁을 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무주칠연양조의 주성규 대표는 유럽에서 새로 들여온 최신 와인 병입시설을 보여줬다. 오크통이 즐비하고 천장 높은 머루와인 동굴 안의 와인카페에서 혀를 적실 정도로 맛보았을 뿐인데, 동굴에 가득한 머루와인향이 오래도록 따라왔다.



 진안은 홍삼으로 특화된 지역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향기 하나를 꼽으라면 인삼이다. 고려 인삼이 일찍이 명성을 얻어 한국 인삼은 경쟁력이 있다. 이 점에 착안해 태평주가의 이영춘 대표는 진심인삼홍삼주를 만들었고, 제품 출시 첫해인 2011년 우리술품평회 일반증류주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대표는 “진안은 홍삼특구로 지정돼 같은 값으로도 좋은 수삼과 홍삼을 구할 수 있어 제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허시명 작가는=농림수산식품부 지정 우리 술 교육훈련기관인 ‘막걸리 학교’ 교장,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삼청동 입구에 자리한 ‘막걸리 학교’에서 막걸리 인문학 강좌, 주안상이 함께 나오는 한국 명주 강좌, 술 빚기 실습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막걸리, 넌 누구냐?』 『술의 여행』 『비주, 숨겨진 우리 술을 찾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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