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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박정희 독재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2012.09.17 00:01 종합 38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싱가포르 리콴유, 대만 장징궈(장제스 아들) 그리고 박정희는 대표적인 아시아 독재자였다. 세 사람은 가난한 신생 독립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려면 개발독재가 필수적이라고 확신했다. 리콴유는 1994년 유명한 ‘아시아적 가치’를 발표할 정도였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아시아에서는 권위주의 통치가 경제개발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3인은 독재를 통해 조국을 부국(富國)으로 만들어놓았다. 리콴유와 장징궈는 후손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사후(死後) 33년이 됐지만 박정희는 여전히 반대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세 나라 중에서 한국이 가장 어려웠다. 가난의 역사가 길고, 참혹한 전쟁을 겪었으며, 안보위협은 여전했다. 60~70년대 북한 도발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공비들이 양민을 학살하고, 게릴라들이 청와대까지 왔으며, 경비병들이 미군 장교들을 도끼로 죽였다. 항상 전쟁의 위험이 있었다. 71년엔 미 7사단이 철수했고 75년 4월엔 베트남이 공산세력에게 함락됐다.



 박정희는 이중(二重)의 난제를 안고 있었다. 김일성의 적화야욕을 막아내면서 경제발전을 이뤄야 했다. 그런 그에게 개발독재는 종교였다. 사실 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가 그렇게 처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71년 대선을 치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김대중과 신민당은 향토예비군 폐지를 주장했다. 북한 위협을 잘 아는 박정희에게 이것은 충격이었다. 박정희는 안보 혼란을 심히 우려했다. 그는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유세에 수십만이 몰립니다. 북한간첩이 몰래 야당 후보를 테러하고 정권이 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나라는 어찌 될까요. 내란이 일어나지는 않을까요.”



 인생에는 욕구를 통제해야 하는 특정한 기간이 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그러하다. 이성교제도, 영화도, 여행도, 달콤한 잠도 참아야 한다. 자신에게 독재 계엄령을 내리는 것이다. 이를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가난한 집 학생은 계엄령이 더 가혹해야 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적잖은 나라가 개발독재를 택했다. 대입 수험생처럼 자유와 인권을 잠시 유보했다. 박정희·리콴유 그리고 장징궈가 그런 지도자였다. 가난한 집 학생, 박정희에게 개발독재는 더욱 필수적인 것이었다. 3인의 개발독재는 김일성이나 마오쩌둥, 마르코스, 남미 군부정권 그리고 중동의 후진국 독재 하고는 크게 달랐다. 개인적 탐욕이 없는 애국독재였다. 독재는 성공했고 국가는 부강해졌다.



 흔히들 박정희가 경제발전은 이뤘지만 인권은 탄압했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대표적인 모순(矛盾) 논리다.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달콤한 독재는 없다. 독재는 모두 추하고 가혹하다. 그런 독재 없이는 경제발전과 안보·국방이 어려웠는데 “왜 독재를 했느냐”고 비난한다. 명문대 입학에 성공한 가난한 학생에게 “여행도 다니고 영화도 좀 보질 그랬느냐”고 하는 것과 같다.



 상대적으로 박정희 독재는 무혈(無血) 독재였다. 대만 국민당 정권은 1949년 2·28 사건 때 본토인 2만여 명을 죽였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77~80)에서는 2만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 독재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었다. 박정희는 집권(5·16) 때도, 퇴진(부마사태) 때도, 18년 통치 때도 반대세력을 거의 죽이지 않았다. 자신과 부인이 죽었다.



 유일한 살인이 75년 인혁당재건위 8명을 사형한 것이다. 당시는 월남 패망 20여 일 전이었다. 정권이 비정상적 심리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쨌든 이는 정권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이다. 정보부는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검찰은 협박했으며,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권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집행만 미루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천상(天上)에서 인혁당 8인에게 사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유족을 껴안는 일은 이승의 딸에게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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