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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GGGI 국제기구화, 발목 잡지 말아야

중앙일보 2012.09.17 00:01 종합 39면 지면보기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지난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제6차 하계 세계경제포럼(WEF·일명 서머 다보스) 회의에 참석했다. 포럼의 한 관계자가 필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한국 정부가 WEF와 공동으로 추진해 온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가 이제 국제기구로 자리 잡게 되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는 이야기였다.



 ‘녹색성장’ 하면 4대 강 사업이나 원전 확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다 보니 그의 칭찬이 바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GGGI도 같은 이유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얼마 전 홍익표 민주통합당 의원이 이 기구를 “방만한 예산 운용과 사업집행 부진, 회계보고자료 조작, 각종 예산낭비 등 총체적 부실덩어리”라고 규정하고 “국제기구로의 전환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의혹을 털고 가자”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물론 의혹이 있으면 털고 가야 하지만 GGGI 국제기구화 지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 그동안 MB 정부가 외교 목표로 설정했던 ‘글로벌 코리아’의 성과는 미미했다. G20 정상회의나 핵안보정상회의 같은 이벤트는 모두 미국 주도의 행사였고, 우리가 순번제로 주최국을 맡은 것뿐이었다. 그러나 GGGI 구상은 다르다. 우리 정부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으로 의제화한 데다 뜻을 같이하는 다른 나라들의 재정지원을 받아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대단한 외교적 업적이다.



 2008년 8월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어젠다를 처음 꺼내들었을 때만 해도 국내외 분위기는 다분히 냉소적이었다. 70년대 초 로마 클럽이 ‘성장 한계론’을 공론화한 이래 성장을 위해서는 자원과 에너지 투입이 필수적이고, 따라서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통한 자원한계의 극복’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허만 칸이나 줄리앙 사이먼 같은 소수의 풍요론자(Cornucopian school)들로 제한돼 왔다. 서구에서도 외면해 왔던 이슈를 한국 정부가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주도권을 잡은 셈이다.



 그 결과가 6월 12일 리우 세계환경회의에서 채택한 GGGI의 국제기구화를 위한 합의의정서였다. 노파심에서 말해두자면 이 의정서에는 4대 강도 원자력 발전소도 없다. 첨단기술의 개발과 공유를 통해 성장과 환경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고 빈곤퇴치, 고용창출, 사회통합, 지속가능한 환경보전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선진국과 후진국,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에 가교 역할도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아이디어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국제적 의제로 만들어 나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부터 시작해 유엔, G20, APEC 같은 다자회의는 물론 많은 양자회의에서도 녹색성장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꾸준히 설득했고, 세계경제포럼 같은 민간기구와 협력해 유수한 글로벌 기업인들의 동참을 유도해 낸 것도 의미가 깊다. 덴마크와 가이아나 등이 이미 이 의정서에 대한 비준을 끝냈고, UAE·노르웨이·카타르·필리핀·코스타리카·에티오피아 등의 비준 동의서도 곧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슷한 비전을 공유하는 중견 국가들에 공을 들인 정부의 노력이 한몫했음은 불문가지다.



 내친김에 돈 문제도 살펴보자. 그동안 한국은 국제사회의 봉이었다. 부담금만 내고 권리는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GGGI의 경우 덴마크와 아랍에미리트, 호주, 영국 등 총 일곱 나라가 이미 연간 500만 달러의 사업비를 각각 다년간 약정했고, 일본과 독일 등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사업비로 공여한 바 있다. 민간기업들도 기금 공여에 참여하고 있다. 그간의 ‘봉 노릇’에 비하자면 신선한 충격이라 할 만하다.



 특히 가장 큰 소득은 한국이 장기적으로 녹색성장의 국제거점국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와 인천시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계기후변화기금(Green Climate Fund) 유치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의 IMF’로 불리는 기후변화기금까지 우리가 유치하게 되면 근무인원만 1500명에 달하는 국제기구가 송도에 자리 잡게 된다. 그쯤 되면 한국을 녹색성장의 메카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GGGI는 분명 매뉴얼로 만들어 두고두고 활용해도 좋을 만한 가치가 있는 외교적 성과다. 이제 국회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조속히 비준에 나서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기구가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국가적 자산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정치쟁점화돼 국내 승인이 지체된다면 손해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 될 공산이 크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 정 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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