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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화성인’ 보수와 ‘금성인’ 진보가 만나면

중앙일보 2012.09.15 00:21 종합 38면 지면보기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엔 남녀의 차이가 극명하게 묘사돼 있다. 문제가 생길 때 화성인(남자)들은 혼자 동굴에 들어가 해결책을 찾고 나서야 기분이 좋아진다. 금성인(여자)들은 누군가에게 자기 문제를 솔직히 털어놔야 마음이 편해진다. 화성인과 금성인이 대화하면서 불화가 생기는 건 서로 다른 전제에 기초해 얘기하기 때문이다. 다른 별에서 온 이들이 화합하려면 더 많이 소통하고 인내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게 최고의 방책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비판적 사고를 지향하는 비영리단체 프로콘은 행태 및 신경 분야의 연구 13건을 분석해 “보수와 진보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에 따르면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극 반응, 이미지 해석 등 많은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뇌 구조까지 달랐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측에 비해 ‘전대상회피질’이 더 컸다. 불확실한 상황을 견뎌내는 능력과 관련이 있는 부위다. 공화당파는 두려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측편도체’가 발달해 있었다. 스티븐 마르코프 프로콘 회장은 “두 집단의 하드웨어가 다른 건 분명하며, 구조적으로 더 많은 소통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실험들이 시사하는 바가 맞는다면 진보와 보수는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그렇듯 입장을 바꿔 상대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대개 반대로 돌아간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대기자가 이번 주 초 『정치의 대가(The Price of Politics)』란 책을 펴냈다. 그는 책에서 미국이 부채 증가로 국가부도 사태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 백악관과 의회가 벌인 막후 협상을 그렸다. 그런데 대통령과 하원의장 등 협상의 주역들이 상대의 양보만을 종용했으며, 그런 불통이 최악의 상황을 낳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드워드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두가 인내심이 없었고 상대 얘기를 듣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책이 나온 날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하며 “문제는 정치”라고 했다. 정부와 의회가 협상을 통해 국가부채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위기가 재연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곧바로 “재정위기를 피할 자신이 없다”는 비관론을 내놨다.



 입장 차를 조정하고 제3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게 정치의 묘미다. 그 시작은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미국 정치를 보면 자기 별의 규칙만 강조하는 듯 보인다. 2012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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