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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영역 표시 확실하게 합시다

중앙일보 2012.09.15 00:16 종합 39면 지면보기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여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늦은 귀갓길, 버스에서 내리면 아파트까지 인적 드문 밤길을 10여 분 걷게 된다. 나의 앞이나 뒤에 여자가 있을 경우 요새는 그녀보다 내가 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여자가 뒤쪽이면 내처 빠른 걸음으로 내달으면 되니까 마음이 그나마 편하다. 앞에 있으면 나도 쭈뼛쭈뼛이다. 살살 걷자니 몰래 접근하는 치한으로 오해받을 것 같고, 발소리를 크게 내자니 더 겁먹을 듯해 난감하다. 여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힐끗 돌아볼 때는 소리치고 싶다.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밤길뿐이 아니다. 낮에 길을 가다가 부모와 동행한 귀여운 어린이를 보더라도 전처럼 방긋 웃어주지 못하게 됐다. 곁에 있는 부모의 눈초리가 의식돼서다. 엘리베이터에 여성과 단둘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부동자세로 두 손 모으고 시선을 층수 표시판에 딱 고정시키는 게 상책이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잠깐 사이에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폭행범, 소아성애증 환자 취급을 받게 돼버렸다. 그저께는 청주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살해한 사건의 용의자가 친딸까지 성폭행한 전과가 있는 옆집 남자로 밝혀졌다. 벌써 몇 번째 ‘이웃집 아저씨’인가. 안동에서는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초등학교 교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울산 20대 자매 살해 용의자가 55일 만에 붙잡혔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 오카방고 삼각주의 ‘동물의 왕국’도 이렇지는 않다. 모든 동물에게 엄격한 영역 구분이 있어서 함부로 남의 영역을 침범하면 중상 아니면 죽음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영역 개념이 희박했던 것은 사실이다. 전통 농경사회, 특히 쌀농사를 지으려면 마을 전체가 단결할 필요가 있었고, 그만큼 평소에도 무람 없이 지내야 했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약속도 없이 열린 사립문으로 불쑥 들어가 “복돌이 엄마 있소?”라고 부르면 되었다. ‘그 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안다’는 게 미덕이었다. 집안에서도 비슷했다. 지금의 장년층 이상 세대가 자랄 때는 단칸방 또는 두 칸 방 가구가 흔했다. 한 공간에서 엄마·아빠와 지내는데도 신기하게 동생들은 쑥쑥 잘도 태어났다. 좁은 데서 부대끼다 보니 자연히 남과의 신체 접촉에 익숙하고 관대해졌다. 그리 오래된 풍경이 아니다. 아파트에서 어려서부터 각방 쓰며 자란 지금 젊은이들에겐 조선시대 얘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군에 갓 입대한 병사들이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게 수십 명이 생활관(내무반)에서 함께 지내는 일”이라던 군 관계자의 말이 떠오른다.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피의자 고종석, 서울 중곡동에서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서진환이 동네 이웃집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은 어디까지나 흉포한 범의(犯意)가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용의자의 희박한 영역 의식이 범의를 부추긴 면은 없을까. 남의 집에 시도때도 없이 불쑥 들어서고 웬만한 신체 접촉은 다반사로 여기는 문화, 들키거나 항의받아도 없던 일로 치면 그만인 문화가 잔혹한 범행의 배경에 깔려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학자들은 타인과의 신체 접촉에 얼마나 민감하느냐에 따라 문화권을 구분한다. 대체로 그리스·터키 등 남유럽·지중해 연안국과 아랍·남미,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접촉 선호 문화로, 영국·독일 등과 아시아 국가는 접촉 기피 문화로 분류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을 접촉 기피 문화권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당장 미국·서유럽 국가에서 살다 온 이들에게 물어보라. 우리나라처럼 길거리에서 남과 부딪치는 것을 예사로 여기거나 임의롭게 등을 치고 머리를 쥐어박았다간 큰일난다. 영역과 신체 접촉에 대한 둔감함이 쌓여 작게는 사소한 무례에서 크게는 성폭행·추행과 각종 폭력사태를 낳는 것은 아닐까.



 안 그래도 올해 1인 가구 수가 2인 가구를 앞질러 전체 가구 중에서 가장 많아졌다. 2035년에는 1인 가구 비율이 34.3%나 될 거란다.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오글거리던 시대가 아니다. 세태 변화에 맞게 영역 개념도 시급히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성폭행 예방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수시로 영역을 돌며 표시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동물의 왕국에서도 한 수 배울 만하다. 먼저 개인 공간과 공공 공간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개인 공간은 거의 성역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허락 없이 발을 들여놓는 자체가 큰 잘못이다. 물론 복지 목적 활동이나 범죄 예방 같은 공적인 일이 생기면 남의 영역에 개입하게끔 세밀한 기준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몸도 마찬가지다. 영역과 신체의 자기결정권이 지금보다 훨씬 존중돼야 한다. 당사자 동의 없이 남의 몸에 함부로 손대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 법과 제도로 이런 새로운 룰을 뒷받침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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