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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북한산 산행 … 욕심 때문에 남에게 상처 준 삶 되돌아본다

중앙일보 2012.09.15 00:11 종합 23면 지면보기
현장을 뛰는 철학자. 강신주(45)는 상아탑에 갇힌 철학을 해방시킨 사람이다. 그는 삶의 고민을 가진 대중과 상처받은 이들의 삶에 철학이라는 메스를 들고 다가간다. 왜 아저씨들이 소녀시대에 열광하는지 라캉의 입을 빌려 설명하고, 경쟁에 지쳐 자살을 택한 KAIST 학생들에게 장자의 말로 위로를 건넨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철학 vs 철학』 『철학이 필요한 시간』 등 17권의 대중 철학서를 쓴 인문학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전국으로 철학 강연을 다니는 그에게 주말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말하고 에너지를 소진하던 주중과 달리 흡수하고 먹고 채우는 그의 주말을 들여다봤다.


[나의 아름다운 주말] 현장을 뛰는 철학자 강신주

산과 연애하며 심신 치유



그는 산에서 배운다. 꽃이 져도 슬퍼하지 않고, 짐승이 똥을 싸도 동요하지 않는 산처럼 살겠다고 다짐한다. [김도훈 기자]


토요일 0시15분. 서울역에 멈춘 KTX 막차가 사람들을 토해낸다. 긴 한 주가 끝났다는 신호다. 서울에서 포항으로, 포항에서 창원·울산·목포·광주까지. 연 이틀 전국을 순회한 떠돌이 강사는 녹초가 돼 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서울역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하나 사들고 사직동 집필실로 간다.



새벽 1시를 넘긴 시각이지만 집필실로 향하는 건 한창 일하다 쓰러지듯 잠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다. 소가 되는 느낌이랄까…. 지칠수록 한 주의 마무리가 중요하다.



사무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놀랍게도 강연은 주말엔 잡히질 않으니까! 늘 그렇듯 밀렸던 메일을 열어본다. 100여 통의 메일을 다 읽을 새가 없어 지워나갈 때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간단한 작업이 끝나면 음악을 틀어놓고 소파에 몸을 누인다. 요즘은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계속해서 듣는다. 아찔한 속도감과 나른한 서정성이 공존하는 쇼팽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소위 ‘필이 꽂히는’ 곡만 질릴 때까지 듣는 게 내 음악 편력이다. 그때그때 다르지만 주로 교향곡보단 소나타를 찾는다. 대중을 상대로 공연하기 위해 작곡한 교향곡은 블록버스터가 심한 반면 소나타에는 대중공연이나 돈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난 작곡가의 영혼이 녹아 있다. 베토벤만 봐도 소나타와 교향곡은 차이가 많았으니까. 작은 소파에 누워 나만의 주말을 꿈꾼다. 눈을 감으니 산, 산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 아침에 눈을 뜨면 산엘 가야지. 새벽 3시를 넘긴 시간 피곤한 눈가에 웃음이 서린다.



집으로 돌아와 두 시간 남짓 잠을 청했나. 5시에 눈을 뜬다. 한낮의 산보다 해 뜰 녘, 해 질 녘의 산이 더 선선해 요즘은 주로 야간산행을 선택한다. 물 한 통을 들고 나선다. 날이 밝기 전에 다녀올 셈이다. 대학 땐 암벽등반에 미쳤고 나이가 들수록 산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 제자들은 내게 산과 연애하는 것 같다고 우스갯소릴 한다. 수업시간에도, 주말에도 산 얘기뿐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왜 그렇게 산을 좋아하느냐고?



극단적 체력활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의식이 없어지는 상태를 즐긴다. 암벽등반할 때 자의식이 생기면 암벽과 내가 분리되고 그 사이로 두려움이 찾아든다. 오직 ‘오르겠다’는 생각만 남을 때에야 암벽등반이 가능하다. 산을 오를 때 나는 빠른 걸음으로 쉬지 않고 걷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부지런히 걷다 보면 무아의 상태로 빠져든다. 자의식이 사라지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발걸음도 산의 리듬을 따라간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오직 산과 나만이 있을 때 나는 극도의 행복을 경험한다.



부암동 코스로 걸어 오른 지 30분. 기차바위에 올라 북한산을 바라본다. 비봉·문수봉·보현봉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번엔 돌아서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본다. 건물들이 작다. ‘10여 층 빌딩들이 여기서 보면 저렇게 작으니 내가 만났던 사람은 얼마나 작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가진 감정은 또 얼마나 작은가’ 조용히 되뇐다. 나를 괴롭혔던 속세에서의 감정이나 본능이 사그라드는 것 같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내겐 소중하다.



지나 보면 30대 후반까지는 미숙해 나도 모르게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아프게 했다. 앞만 보고 달리며 주변을 배려하지 않은 탓이다. 철학을 시작했던 동기 중 하나도 ‘가장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제일 어려운 학문을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자의식이 강해 대학원에서 함께 스터디하는 후배들이 기대에 못 미칠 때는 무시하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곤 했다. ‘나는 니체다’라는 자부심만큼 ‘나는 강신주다’라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있어야 내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안중에 없었던 게다. 이기적으로 살아온 날들이었다.



한데 마흔을 여섯 해 넘긴 지금 나는 ‘내 남은 생은 타인을 보듬는 데 쓰겠다’고 다짐한다. 생의 절반을 상처 주며 살았다면 나머지 반은 그 잘못을 갚아가며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산이 내게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가벼운 몸살을 앓는 이를 찾아 산속으로 왕진 가는 의사처럼 타인의 작은 고통에도 공감하려고 한다.



‘발터 벤야민’ 어떻게 쉽게 설명할까 고민 중



기차바위에 앉아 서울시내를 바라보는 강신주 박사.
오전 7시. 인왕산의 일출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온다. 담배 한 대를 물고 땀을 식힌다. 조금 있으면 부암동 클럽에스프레소 커피집이 문을 연다. 산행 뒤엔 언제나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땀을 흘리면 속은 오히려 차가워진다. 찬 속을 달래기 위해 예가체프 두 스푼에 구수한 브라질 커피 한 스푼을 블렌딩한 커피를주문한다. 수차례 시도해 찾아낸 내 스타일의 블렌딩이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난 뒤엔 인근 맛집을 찾아 나선다. 주중이 떠드는 시간, 소진하는 시간이라면 주말은 내게 차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악을 흡수하며 채우는 시간이다. 주중 강연은 전쟁이라 기차 시간을 맞추려면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고작이다. 토요일 낮 광화문 인근이나 적선동에서 조용한 음식점을 찾는다. 자주 가는 곳은 체부동 잔치집. 잔치국수와 두부김치가 일품이다. 주로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맛이 생각날 때 찾는다. 식사 뒤에는 다시 집필실로 돌아간다. 집필실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떡도 사고 담배도 한 보루 사들고 간다. 내가 있든 없든 와서 흔적을 남기고 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다.



이 더러운 곳이 집필실이라니. 픽 웃으며 자리에 앉아 글 쓸 태세를 갖춘다. 각종 기고문을 쓰고 나면 강의안을 준비한다. 새것이 아니면 강의에 힘이 없기 때문에 힘들어도 강의안은 매번 새로 만든다. 최근에는 발터 벤야민을 읽고 있다. 원문을 찾아 읽고 쉽게 설명할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저녁 시간이 간다. 이때만큼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도 피곤하질 않다. 채우는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체력 허락할 때까지 철학 강연 계속할 것



일요일에는 사치를 부리고 싶어진다. 광화문 주변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을 찾아 먹물 리조토를 시킨다. 식사하며 생각에 잠긴다. 2010년. 지독했던 산행과 집필의 기억이 떠오른다. 『철학 vs 철학』을 쓰던 당시 산행에 매달린 건 불가피했다. 육체적 극단에 다다르지 않으면 정신이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하루 8~9시간 집필한 뒤 누우면 잠이 안 왔다. 내가 썼던 모든 문장과 개념들이 머릿속을 떠돌며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이틀 집필한 뒤 하루는 힘든 산행을 택했다. 생각 없이 잠들기 위해서였다. 이틀 집필, 하루 산행이 넉 달간 반복됐다. 탈고 후 쓰러졌고 그때 내 한계가 1000페이지라는 걸 깨달았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넉 달 만에 썼다는 것을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단행본은 한 달 안에 써야 한다는 게 내 신조다. 산을 종주하듯 높은 데도 있고 낮은 데도 있고,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해야 단행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타는데 이번 주는 여기까지, 다음 주는 어디까지라고 하는 것은 산행이 아니라 그저 업적 달성이다. 책도 종주처럼 집중도가 필요하다.



상념에 잠겨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강연 요청이다. 지방 강연이고 강연료도 넉넉지 않지만 거절하지 않는다. 특히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강의는 반드시 한다. 선생님들만 잘 가르치면 이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인문학적 삶이나 감수성이 전달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대중강연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다가 힘에 부치면 양양이나 속초에 집을 짓고 매일 설악산을 누비며 글을 쓸 것이다. 짐승이 와서 똥을 싸도 움직이지 않고, 예쁜 꽃이 피어도 연연하지 않고, 꽃이 져도 슬퍼하지 않는 산처럼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되길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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