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범죄 취약한 노래방 도우미 … 생명보험 들어도 보상 못 받아

중앙일보 2012.09.15 00:06 종합 24면 지면보기
도우미가 대기 중이라고 홍보하는 노래방, 생명보험회사에서는 보험 가입을 거부할 정도로 ‘위험 직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유흥가는 물론 주택가와 학교 인근까지 노래방은 즐비하다. 한때 건전한 놀이공간으로 자리매김했던 노래방이 하나 둘씩 술을 파는 음주·가무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거기에 ‘도우미’가 끼어들면서 사실상 유흥주점이 돼버렸다. 유흥(遊興)의 사전적 의미는 ‘흥겹게 논다’는 뜻. 하지만 노래방의 현실, 특히 흥을 돋우는 도우미의 실상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특히 최근 들어 노래방 도우미가 손님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마저 잇따르고 있다. 도우미들은 어떤 이유로 노래방을 일터로 선택했을까.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한번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낮에는 ‘학생’ 밤에는 ‘도우미’



 지난달 8일 오후 11시쯤 서울시청 부근의 한 유흥가. 취재진은 ‘도우미 항시 대기’라고 씌어 있는 한 노래방에 손님을 가장해 들어가봤다. 퀴퀴한 공기를 뚫고 선홍색 조명의 노래방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몇 명이세요? 아가씨 다 필요하세요?” 일행이 모두 남성임을 확인한 업주는 묻기도 전에 도우미를 권한다. 그러면서 “안 예쁘면 바꿔 드릴게요. 다 20대 초중반입니다”고 덧붙인다.



 취재진이 자리를 잡은 지 10분쯤 지나자 앳된 여성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모씨와 고모씨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이들은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오빠 죽을 것 같아. 양주 먹고 맥주 먹고 짬뽕으로 먹었어.” 이들이 앉자마자 처음 건넨 말. 그녀들에겐 취재진이 이날 세 번째 손님이었다.



 두 여성은 올해 초 지방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이자 단짝이었다. 둘 다 의상디자이너가 꿈이어서 서울로 올라와 같은 학교 의상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공부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서울 생활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두 사람은 낮에는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노래방에서 일하는 ‘이중생활’의 길을 택했다.



 며칠 뒤 취재진은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도우미 이모(26)씨는 취업준비생이었다. 지방 국립대 경영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상경해 은행 입사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생활비에 쪼들려 잠깐만 하자고 시작한 일이 벌써 2년째가 됐다. 이씨는 “오후에는 토익 학원을 다니고 밤에 나와 일한다”며 “부모님께는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놨다.



시급 2만5000원의 덫



 “부지런히 하면 4~5시간 뛰죠. 1시간에 2만5000원이니까 하루에 10만원 정도….”



 서울시청과 강남 일대의 노래방 10곳을 돌아본 결과 도우미 비용은 시간당 3만~5만원 선이었다. 이 중 절반은 도우미를 대주는 이른바 ‘보도방 업주’가 떼어가고 남은 절반이 도우미 손에 들어온다.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4580원)의 다섯 배 정도다. 노래방은 술·안주와 노래값으로 이득을 남긴다. 특히 ‘2차 성매매’를 나가면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다. 대학생 등 젊은 여성들을 끝없이 유혹하는 구조다.



 여성가족부의 ‘2010 성매매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래방 가운데 20%가 ‘2차’를 알선하고 있다. 전국 노래방의 숫자가 4만 개 정도로 추산되는 걸 감안하면 8000여 곳에서 불법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도우미로 일하는 여성의 숫자는 약 2만6000명으로, 룸살롱 접대부를 제외하고는 유흥업계에서 단일 직종으로 가장 많은 숫자다.



 도우미 이씨는 “룸살롱은 항상 얽매어 있어야 하지만 노래방 도우미는 필요할 때만 일할 수 있다”며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만둘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잠깐 일을 쉬다가도 돈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노래방”이라고 고백했다.



성폭행에 잇단 살인까지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선 사망한 노래방 도우미 김모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부산의 한 노래방에서 만난 손님을 따라 성매매에 나섰다가 살해당했다. 김씨의 유족들은 김씨가 2010년 가입한 생명보험사에 보험금 1억2000만원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하자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보험에 가입할 때 김씨가 직업란에 ‘주부’라고 적었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보험사에 ‘노래방 도우미’라는 직업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음을 지적한 것이다. 보험을 가입할 때 직업란에 ‘노래방 도우미’라고 적을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만약 그렇게 적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보험사 관계자는 “청약 당시 고지한 직업으로 상해의 급수를 정하기 때문에 만약 김씨가 직업란에 도우미라고 썼다면 가입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래방 도우미는 생명보험 가입조차 거부당하는 ‘위험 직군’인 셈이다.



 같은 달 경남 창원에서도 노래방 도우미가 손님과 ‘2차’를 나갔다가 모텔에서 피살됐다. 피해자는 이날 피의자의 파트너가 아니었지만 그 남자가 다른 도우미에게 성매매 제안을 거절당하면서 소란을 피우자 대신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 지난 3일에는 2008년 서울 송파동에서 친구와 함께 노래방 도우미 두 명과 주인 등 세 명을 흉기로 위협한 뒤 집단 성폭행한 김모(40)씨가 4년 만에 붙잡히기도 했다.



 노래방 도우미들이 연쇄살인의 표적이 된 경우도 있다. 바로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 사건이다. 강호순이 살해한 여성 7명 가운데 3명이 바로 노래방 도우미였다. 여성에게 증오심을 갖고 있던 강호순이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었던 희생양이 노래방 도우미였다.



법 어긴 업주 3000만원 벌금내면 그만



 유흥업 종사자가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크지만 나름의 안전장치는 갖추고 있다. 사창가의 경우 성매매공간이 일정한 데다 업주가 지키고 있어 손님이 범죄를 저지르기가 쉽지 않다. 룸살롱도 생각보다 철저하게 여종업원들을 관리한다. 한 룸살롱 업주는 “신원이 확실한 단골손님이 아닌 이상 아가씨들을 외부 숙박업소로 내보내지 않는다”며 “정해진 숙박업소에서 성매매를 할 때도 비명이 들리거나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아가씨가 나오지 않을 경우엔 문을 따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뜨내기 같은 노래방 도우미들은 무방비 상태와 다름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도우미들은 “생판 모르는 남자를 상대로 일하는 게 가장 두려운 부분”이라며 “강력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섬뜩하고 무섭지만 어쩔 수 없어 다시 노래방에 나온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유흥업소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어차피 너희들도 불법이지 않느냐’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범죄심리학) 교수는 자신의 행위가 실정법 위반인 줄 알면서도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정당화한다는 ‘중화이론’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도우미에 대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심리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래방 도우미들의 안전을 담보해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불행히도 뾰족한 수는 없다. 그들이 위험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다. 음악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22조에 따르면 노래연습장은 접대부를 고용할 수 없고 접객 행위도 하면 안 된다. 이를 어기면 노래방 업주는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도우미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성매매특별법처럼 도우미를 찾는 손님까지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요를 차단해야 공급도 끊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성매매특별법이 매춘을 근절시키지 못하듯, 어떠한 처벌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막지 못한다. 노래방 도우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마련해줘야 하는 이유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