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위대, 미 영사관 난입 불지르고 로켓포 공격

중앙일보 2012.09.13 01:28 종합 14면 지면보기
11일(현지시간)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서 무장시위대에 피습당한 한 남성이 시민들에게 부축돼 옮겨지고 있다. 이후 그의 신원이 리비아 주재 미 대사 크리스토퍼 스티븐스로 밝혀졌으나 그는 끝내 숨졌다. [벵가지 AFP=연합뉴스]


‘아랍의 봄’은 미국엔 겨울인가. 민주혁명이 일어난 아랍 국가들에서 격렬한 반미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는 9·11 테러 11주년인 11일(현지시간) 무장시위대가 미국 영사관을 공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미 대사와 외교관 3명 등 4명이 사망했다.

‘9·11 테러’ 11주년 되던 날 리비아 주재 미 대사 피살



수시간 앞서 이집트 카이로에서도 미국 대사관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고 성조기가 불탔다. 철권통치자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가 지난해 축출된 이후 미국 외교 공관이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알아라비야 방송에 따르면 리비아 영사관을 공격한 무장조직은 ‘안사르 알샤리아’다. 표면적인 공격 명분은 미국에서 제작된 이슬람 모독 영화였다. 하지만 그동안 잠재해 있던 이 지역 시민들의 반미정서와 불만이 새 자유체제에서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미국은 그동안 아랍의 민주화를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동에서의 급격한 체제변화로 친미 동맹국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예의 주시해 왔다. 이러한 우려가 이날 실제로 과격한 반미시위 형태로 나타나자 미국은 긴장하고 있다.



 미 정부는 이번 사태를 문제의 영화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고 있다. 반미정서와는 관계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집트·리비아 현지 공관 공격을 계기로 ‘아랍의 봄’ 국가들에서 반미시위가 확산할 것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무장시위대가 휴대용 로켓포(RPG) 공격까지 했다는 것은 단순히 영화에 대한 불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미국의 걱정거리다. 게다가 친미·세속주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하고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집권한 이집트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미정서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북아프리카·중동에서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이집트에서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중동정책은 중대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반미정서가 주변국들로 급속 확산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2일 이번 공격은 무자비한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전 세계 미 외교 공관에 대한 보안 강화를 지시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 이런 폭력적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랍의 봄 국가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미국의 근심을 더욱 키운다. 리비아 최고치안위원회(SSC)의 압델 모넴 알후르 대변인은 “시위대가 리비아의 불안한 치안상황을 이용해 더 많은 불안정을 야기하려고 한다”며 “시위대의 공격은 같은 날 이집트에서 벌어진 시위와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 대사관 담을 타고 넘어간 이집트 시위대는 미국 국기를 끌어내려 불태운 뒤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마호메트가 신의 메신저다’라는 글귀가 쓰인 검은색 깃발을 달았다. 이 깃발이 상징하듯 봄을 맞은 아랍 국가에서 미국의 위치는 암울한 겨울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근무 중 숨진 미국 대사는 모두 5명이다. 가장 최근엔 1979년 주아프가니스탄 대사 아돌프 덥스가 희생됐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