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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금기 파고들던 소설가, 성경을 잡다

중앙일보 2012.09.13 00:39 종합 27면 지면보기
소설가 오정희씨가 성경을 쉽게 풀어 쓴 책을 냈다. 오씨는 “성경이 잘 안 읽힌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오정희(65)씨가 신앙인이자 작가의 입장에서 성경을 쉽게 풀어 쓴 책을 냈다. ‘가장 오래된 사랑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붙인 『오정희의 이야기 성서』(여백)다.


『이야기 성서』 펴낸 오정희 씨

 인간성의 본질과 세상의 실상을 탐문하는 작가가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오정희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오씨는 주로 우리 사회의 성적·윤리적 금기, 인간 내면의 복잡한 욕망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평론가 박혜경).



 오씨는 왜 느닷없이 ‘쉬운 성경책’을 쓴 것일까. 6일 오씨를 만났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이야기 성경책을 낸 이유는 이 시대 평균적인 신자들의 고민이라고 할 만한 것과 닿아 있었다. 신자이면서도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는 것, 성경책은 혼자 읽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런 것들 말이다.



 -이번 책은 좀 의외다. 선생님의 소설과 성경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다.



 “한동안 문학과 종교는 상충한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를 미션스쿨(이화여중·고)을 나왔지만 뭔가 거룩하고 숭고한 것에 헌신한다는 소녀 취향적인 생각으로 기독교를 대했던 것 같다. 작가가 되고 나서는 내 존재가 신이라는 타자에 쉽게 함몰되는 것에 대한 내적인 저항이 있었던 것 같다. 석연치 않게 해결(항복)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랄까. 하지만 한편으론 문학과 종교가 접점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둘 다 세상의 비극, 슬픔, 까닭 모를 고통에 관여하지 않나. 지금은 종교에 대한 저항감이 많이 없어진 상태다.”



 -어떻게 쓰게 됐나.



 “10년 전쯤 성당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 가톨릭 잡지에 성경 이야기를 연재하게 됐다. 그걸 묶었다. 당시 연재를 했던 이유는 그걸 핑계 삼아 나 스스로 성경을 알기 위한 것이었다. 뭔가 쓰려면 성경을 찬찬히 읽어야 하지 않겠나. 한편으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방대한 말씀의 숲에 가린 스토리 라인을 잡아주면 사람들이 성경을 좀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위해 성경을 여러 번 읽었고 각종 문헌과 주석도 찾아 봤다. 어느 정도 성경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신앙인으로서 소득은 좀 있었나.



 “죽는 날까지 신은 이런 존재다, 하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신을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결국 계속 성경을 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 책은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를 추렸다. 구약은 천지창조부터 모세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기까지, 신약은 탄생에서 부활까지 예수의 일대기를 다룬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마태오 복음이다. 매끄러운 문장, 오씨의 친절한 해설과 주석이 곁들여져 감칠맛 나게 읽힌다. 특히 이사악의 아들인 야곱과 에사우 형제의 갈등과 화해 이야기는 흡인력 있는 반전(反轉) 드라마가 따로 없다.



 -성경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을 꼽으라면.



 “역시 예수의 최후다. 최후의 만찬 후 홀로 올리브 산에 올라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이르고는 당신은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한다. 제자에게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던 외로움과 고통은 결국 ‘봉인된 편지’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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