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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 생존법 찾자” 자산시장, 일본 배우기

중앙일보 2012.09.13 00:29 경제 1면 지면보기
김남구(49)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은 최근 서울을 방문한 노무라증권 부사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부회장은 일본의 장기 불황에서 살아남은 노무라증권의 생존법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김 부회장은 즉각 ‘일본 자산시장에서 얻을 교훈이 무엇인지 공부하라’고 주문했고, ‘자산관리 컨설팅형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저성장·저금리시대 닮아가

자산시장에 일본 배우기 열기가 뜨겁다. 한국경제 사상 유례없는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미 곳곳에서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외국 투자은행은 올해 한국경제가 2.7%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더구나 이 수치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 분야에서 일본은 대선배다. 한국보다 앞서 20년간 저성장·저금리의 터널을 지나왔다. 노하우가 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투자증권도 최근 황성호 사장을 포함한 팀이 벤치마킹을 위해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다.



가까운 일본은 늘 참고 대상이니, 일본 배우기가 새삼스러운 것은 못된다. 하지만 요즘 관심은 유별나다. 자산 거품이 정점에 이르렀던 1989년 전후도 그랬다. 그땐 잘나갈 때 어떻게 할지를 배웠다. 일본 증시는 당시 절정이었다. 1989년 말 일본 시가총액은 미국 시총의 1.5배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일본 경제가 추락하면서 모든 시선이 미국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20여 년, 다시 일본을 주목하게 됐다. 이번엔 불황에서 살아남기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90년대 이후의 일본은 디레버리징(부채 줄이기)으로 인한 경제 환경 변화에 한 사회가 어떻게 적응했는지 잘 보여준 사례”라고 일본 벤치마킹 열기의 배경을 설명했다.



증권업계가 꼽는 저성장 시대 일본의 투자 화두는 ‘현금 흐름 창출’과 ‘해외 투자’ 두 가지다. 우리투자증권 황 사장은 "일본 투자상품의 90%가 월 지급형”이라며 "은퇴 자산의 증가와 맞물려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내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2000년대 초반 일본 개인투자자들은 낮은 금리의 엔화를 환전해 해외투자에 나섰다. 특히 고성장 국가의 국채와 고금리채권을 많이 샀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일본 대형 투자신탁회사인 고쿠사이 투신의 ‘글로벌 소버린 채권펀드’에는 한때 5조 엔을 넘는 돈이 몰리기도 했다. 우다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2002년께는 해외국채, 2004년에는 부동산투자신탁, 2007에는 고수익 호주채권, 2010년에는 인프라펀드 등이 일본에서 인기를 끈 금융상품”이라고 말했다. 결국 예금보다는 수익률이 높고, 주식 같은 위험자산보다는 안정적이며, 여전히 고성장을 구가하는 해외 이머징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및 최근 유럽 재정위기와 이어진 저금리는 이미 국내 투자 지형을 모두 바꾸고 있다. 투자자도 달라졌다. 코스피지수가 1900선을 회복했지만 주식시장은 썰렁하다.



예금과 채권에만 돈이 몰린다. 30년짜리 국채 금리가 일주일짜리 기준금리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김진하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사는 "해결되지 않는 선진국의 재정 문제가 마음에 걸려 이제 투자자들은 자산가격이 오른대도 옛날처럼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 경제는 다른 점도 많다. 무엇보다 한국은 기업이 상대적으로 건강하다. 80년대 이후 일본 기업은 이익률이 계속 하락했다.



반면 한국 기업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일본 고령층은 원금을 헐어 월 분배금을 주는 상품에 잘 모르고 투자했다가 후에 사회 문제가 됐다. 대규모 해외 투자에 나섰다가 환율 변동으로 손실을 입은 경우도 많았다. 강창희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일본의 경우를 무조건 따라할 게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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