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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경이 정보만 공유했어도 살인을 막았는데

중앙일보 2012.09.13 00:08 종합 38면 지면보기
대한민국 치안 시스템이 이 정도로 엉망인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검찰과 경찰이 상습 성폭행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감시한다기에 제대로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서울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 이후 하나씩 드러나는 정황들은 기함할 지경이다.



 중곡동 주부 살인범은 성폭행 전과로 전자발찌를 착용 중이던 서진환이었다. 그런데 이때까지 경찰은 관내에 전자발찌 착용자가 있는지도 몰랐다. 경찰서는 전자발찌를 관리하는 법무부로부터 통보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뒤늦게 보호관찰소에 문의하고 나서야 신원과 동선을 파악했다. 그런데 또 10여 일이 지난 뒤 이번엔 주부 살해 2주 전에 같은 동네에서 벌어졌던 성폭행범도 서진환이라는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성폭행 사건 당시 국과수에 범인 DNA 분석 의뢰가 들어가 있었지만, 검찰이 가지고 있는 DNA샘플이 경찰과는 공유되지 않아 범인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적거리는 사이 범인은 또 다른 범행 대상을 찾아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전자발찌의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과 함께 검·경이 서로 엇박자를 내는 통에 기왕의 제도마저 무력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예로 2008년 시작된 전자발찌 착용자에 대한 행적 조회는 그동안 13건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유력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활용됐다. 검찰도 경찰도 전자발찌 착용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예방이 아닌 사후 검거용으로만 활용된 것이다.



 검찰은 경찰이 전자발찌 행적을 조회하지 않는다고 타박하고, 경찰은 영장을 발부받아야 해 조회 자체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검·경이 각각 성범죄 대책을 수두룩하게 쏟아놓는다고 대수가 아니다. 검·경이 범죄자들 DNA샘플 하나 공유하지 않고, 각자 영역 싸움에 엇박자를 내면서 어떻게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범죄는 날로 흉포해지고, 검·경의 엇박자는 더욱 심해지니 우리 치안을 이대로 믿고 맡겨도 좋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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