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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당신의 재테크 상식, 다 틀렸다

중앙일보 2012.09.12 00:27 경제 4면 지면보기

상식 1. 주식은 장기투자해야 돈 번다


불황이 바꾼 재테크 트렌드

틀렸다. 상장기업 10개 중 4개는 5년 장기투자에도 마이너스 수익률



상식 2. 채권은 장기 보유한다



틀렸다. 금리 급락 때마다 매물 쏟아지는 단타형 투자 급증



상식 3. 물가채, 물가 계속 오를 때만 투자매력 있다



틀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두 달째 1%대로 떨어지는데 투자 몰려



상식 4. 회사채 금리는 기준금리보다 높다



틀렸다. 롯데쇼핑 발행금리(2.98%)가 기준금리(3%)보다 낮아



상식 5. 저금리 계속되면 주식 등 위험자산에 돈 넣어라



틀렸다. 저금리 추세에도 증시엔 돈 안 들어와





“당신은 투자원칙을 잘 지키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수익률은 별로 안 좋겠군요.”



 어쩌면 조만간 재테크 전문가가 투자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계 경기침체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투자의 ABC만 지키면 돈을 지킬 수 있다”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돈의 흐름도 과거 상식과 달라졌다. 저금리 시대엔 주식 등 위험자산에 몰리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 보다도 낮은 채권에만 주로 돈이 몰린다. 그뿐이랴.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데도 물가연동국채(물가채)에 돈이 몰려든다. 11일 국내에서 처음 나온 만기 30년짜리 국고채 금리는 20년물보다 더 낮게 발행됐다. 과거 재테크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긴 셈이다.



 재테크 상식 붕괴의 시대다. 불황의 그림자가 워낙 짙은 탓이다. 너나없이 안전자산을 쫓고, 기대치를 낮추다 보니 절세상품만 반짝 뜬다. 장기투자에 대한 믿음도 흔들린다. 상식 중의 상식으로 통하던 주식 장기투자를 자신 있게 말하는 전문가들이 줄었다. “우량주를 사서 묻어두면 시간이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수익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의 5년 평균 수익률은 7.65%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2.37%)에 비해선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수익은 낮아도 안전하다’는 이유로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의 5년 수익률(31.33%)에 비하면 크게 낮다.



 주식 개별 종목 투자도 비슷하다. 삼성증권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거래소에 상장된 616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 5년간 이들 종목을 장기 보유했다면 열 종목 중 네 종목(237종목)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48.69%)보다 덜 오른 종목도 384개로 전체의 62.3%였다. 김성봉 삼성증권 팀장은 “연 평균 40건 정도 상장 폐지 회사가 나올 정도로 주식투자는 위험이 늘 존재한다”며 “주가의 상승·하락은 계속 반복되지만 시장을 이끄는 주도주는 매번 뚜렷하게 바뀌는 만큼 이 흐름에 걸맞게 종목을 재조정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요즘엔 심지어 채권투자도 단기화하는 추세다. 채권 전문가들은 “만기 때까지 보유하려는 투자자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며 “특히 수퍼리치들은 채권값이 오르면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 돈을 벌겠다는 계산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채권펀드=장기투자’가 정석으로 통했던 채권형 펀드 투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익이 나면 곧바로 차익을 실현하는 단기 투자형으로 바뀌고 있다. 한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는 “채권형 펀드가 주식형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채권 단타 매매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와 맞물려 가속도가 붙기도 했다. 지난 7월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자 채권값이 올랐고, 그 즉시 채권형 펀드 환매가 몰린 것이다. 당시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은 전날보다 0.22%포인트 떨어진 2.97%로 급락했다. 그러자 2거래일 뒤인 7월 16일 국내 채권형 펀드에선 964억원이 빠져나갔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중장기 투자상품인 채권형 펀드까지 단기 차익실현에 나선 결과”라고 분석했다.



 세금에 민감해진 것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어차피 어떤 상품에 투자하든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절세가 우선’이란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게 물가채다. 물가채는 최근 수퍼리치 사이에 국고채 30년물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물가채 입찰에는 개인투자자 배정 물량 800억원이 마감 3일 전에 매진됐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지난해 판 물가채가 1087억원어치였는데, 올 들어 8월까지만 벌써 2700억원어치를 팔았다”고 말했다.



 물가채는 물가가 계속 오른다고 전망할 때 적합한 투자다. 물가 상승분만큼 투자금도 늘어나는 구조라 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물가는 하락세다. 지난달엔 전년 대비 1.2%까지 떨어졌다. 물가채는 만기일 물가가 발행일보다 낮으면 원칙적으로 원금 손실이 발생(2010년 이후 발행물은 원금 보장)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요즘 상황에선 돈이 몰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투자가 몰리는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물가채는 물가 상승에 따른 투자금 증가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준다.



 채권 투자가 인기를 끌면서 회사채 시장도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달 롯데쇼핑은 기준금리보다도 낮은 연 2.98%에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투자금이 몰리면서 채권값이 크게 뛰는 바람에 회사 입장에선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셈이다. 14일 20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인 삼성 SDI 회사채 금리도 2.96~3.06% 수준으로 결정될 전망이다. 워낙 돈이 몰리다 보니 애초 계획보다 발행액을 늘리는 곳도 있다. LG전자는 당초 2000억원을 발행하려 했지만 기관투자가의 청약이 늘자 3000억원으로 늘렸다. 한 채권 펀드매니저는 “시중금리보다 두둑하게 얹어줘야 간신히 소화되던 회사채 시장은 옛말”이라며 “우량회사 채권이란 말만 나오면 금리 불문하고 투자금이 몰릴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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