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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빈약한 대선 종합선물세트

중앙일보 2012.09.12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김수길
주필
“비전·정책 없는 계산·흥행 속 / 콘텐트 빈약한 올 대선 주자들 / 유권자는 이미 정치공학 염증 / 대통령 되려면 내용·진정성을 / 대선 D-210, 하루가 아깝다.”



 올 5월 23일에 쓴 글의 부제목들이다. 그제 대선 D-100일이 지났으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내용·진정성 없는 정치공학 속에 대선을 앞둔 우리는 가난한 유권자들로 남아 있다. 대선 종합선물세트는 아직 빈약하다. 부자 유권자가 될 수는 없을까?



 꿈을 이루려면 생각부터 해야 하는데, 정치권과 선거판에서 눈을 떼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함께 생각해보자.



 김병준의 생각, 송호근의 생각, 김상조의 생각들이다.



 이들은 각자 걸어온 길이 다르다. 정책학자 김병준은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사회학자 송호근은 대학 강단에 서며 칼럼 집필과 저작에 몰두해왔다. 경제학자 김상조는 강의와 함께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들 어느 대선 캠프에도 몸담고 있지 않다.



 디지털 시대에 이들이 최근 각자 펴낸 아날로그 저서·논문을 보면 한곳으로 모아지는 생각이 뚜렷이 읽힌다.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김병준),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송호근),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과제』(김상조)는 모두 이 시대의 유권자들이 읽어보아야 할 생각들이다. 어렵지 않다. 쉽게 읽힌다.



 김병준은 ‘무용한 지식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진영 논리로 나뉜 채 확신에 차서 갖고 있는 생각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쓸모없고 잘못된 생각인 경우가 많은지를 우리가 겪어서 알고 있는 실제 사례들을 통해 맨 얼굴로 보여준다. 금세 민망하다.



 송호근의 들어가는 말 첫머리는 ‘헷갈리죠?’다. ‘너는 어느 쪽인가’를 매일 질문해대는 사회 속에서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지 헷갈릴 것이라는 진단으로 책을 시작한다. 나도 위안이 된다.



 김상조는 ‘경제민주화의 실체적 내용을 규정하려는 노력을 경계한다’로 경제민주화를 풀어간다. ‘선명성 경쟁이라도 하듯 초강력 공약을 잇달아 발표하는’ 여야 모두에 대한 의구심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되레 선명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뚜렷한 생각을 가진 세 사람이 어찌 다들 같은 출발선상에 섰을까.



 그 이유는 송호근의 책 제목 그대로다. 좌·우, 보수·진보의 2분법을 넘어야만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비로소 내디딜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세 사람은 공유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보다는 뭉쳐서 이기자는 구호가 세상을 덮고 있고, 상대를 공격하고 분노를 일으켜 표를 모으는 정치가 계속되는 한, 집권해서 세상을 바꿀 메시아(대통령)는 오지 않는다고 김병준은 단언한다.



 김상조는 자신이 어느 한쪽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한다. 경제민주화를 다수 대중을 동원하는 거대 담론이나 도달해야 할 목표로 다루는 것은 실제 변화를 이끌 수도 없고 위험하기도 하다고 진단한다.



 그럼 해답은 무엇일까.



 송호근은 좌우파의 ‘공동 구역’을 역설한다. 이념 아닌 실익과 공익을 위한 공동 구역.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자리, 그 일자리 만들기·지키기·나누기를 위한 일자리 정치, 그 일자리 정치가 가능한 공동 구역. 그런 공동 구역을 만들기 위해 이제 우리는 좌우 연립정권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송호근은 제안한다.



 김병준의 ‘관용’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 다른 진영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서로 숙의해 가며 제대로 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 다음엔? 우리가 선택하는 합의다.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로 각론을 풀어간 김상조의 주장에 대해서도 관용을 바탕으로 한 공동 구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곧 추석이다. 그리고 대선이다. 무엇으로 종합선물세트를 채울까.



 김병준은 ‘국민이 메시아다’로 끝을 맺는다. 성장·양극화·복지 등의 이슈에 대해 깨어 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송호근도 유권자의 선택에 기대를 건다.



 “어떻게 풀 것인가는 곧 선택의 문제다. 정치인의 선택이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 대중의 선택이다. 이념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이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상태를 방치하지 말고 우리의 선택을 그들에게 하달해야 한다.”



 가난한 유권자들이 부자 유권자가 되는 방법은 생각이 깊은 유권자가 되는 것뿐이다.



 가을의 초입에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우리의 생각도 가다듬어 보자. 선명하고 단호한 무용지식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헷갈리며, 2분법을 넘어, 공동 구역을 찾아보자.



김수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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