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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사죄 … 일 불교 ‘참회의 비’

중앙일보 2012.09.11 00:43 종합 22면 지면보기
일본의 불교종단인 조동종이 군산 동국사 앞뜰에 세울 참사비문. 16일 제막식을 앞둔 비문이 신문지 등으로 가려져 있다. 비문에는 ‘해외 포교를 핑계로 일제가 자행한 야욕에 아시아인이 인권 침해를 당했다. 이는 불교적 교의에 어긋나는 행위다. 석가세존과 역대 조사(祖師)의 이름으로 행했던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다.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동국사는 국내에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사진 군산시]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체포된 일본인 가운데 다케다 한시(武田範之·1863~1911)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해사건의 책임자인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郞)의 핵심 참모였다. 10여 년 뒤 다케다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국통감으로 부임할 때 다시 한국에 건너와 친일단체 일진회를 통한 한국 병합공작을 주도했다.

일본 대표 불교 종단 조동종



특이하게도 다케다는 당시 일본 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동종(曹洞宗) 소속의 승려였다. 다케다를 비롯한 조동종 승려들은 불교 포교란 구실로 절을 세우고 한민족의 황민화 등 한반도 지배정책의 일익을 담당했다. 1945년 일제 패망 당시에는 한국에 160여 개의 사원과 포교소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랬던 조동종이 과거 행적을 참회하는 비석을 전북 군산시 금광동 동국사에 세운다. 조동종 스님 10여 명은 16일 오전 10시 ‘동국사 창건 제104주년 다례제’에 참석해 참회법회를 할 예정이다.



법회에서는 ‘참사(懺謝·참회와 사과의 줄임말) 비문 제막식’도 함께 거행된다. 비문에는 ‘해외 포교를 핑계로 일제가 자행한 야욕에 수많은 아시아인이 인권 침해, 문화 멸시를 당했다. 이는 불교적 교의에 어긋나는 행위다. 석가세존과 역대 조사(祖師)의 이름으로 행했던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다.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한다’는 내용이 새겨진다.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우리 종문(宗門)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는 표현도 있다.



 동국사의 주지 종명 스님은 “법회 당일 일본 스님들이 와서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이 겪은 고초와 고통에 대해 사과 발언을 할 것”이라며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돼 있는 민감한 시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참회는 양국 관계 복원과 발전을 도모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사에 있을 때 이 작업을 주도했던 군산 성불사의 종걸 스님은 “참사비는 20여 년 전 일본 조동종에서 발표한 ‘참사문’을 새긴 것으로, 양심적인 일본 승려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했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에서 나는 화강암을 사용해 만든 비석의 제작 비용 등도 모두 조동종 측이 부담했다.



 군산 동국사는 일제의 강제병합 직전인 1909년 조동종 승려에 의해 창건된 절이다. 경내에 소조 석가여래 삼존상·복장 유물·대웅전 등 보물과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일본 ‘조동종’



선불교를 행하는 일본의 대표적 불교 종파다. 일본 내에 1만5000여 개의 사찰을 거느리고 있다. 1992년 한·일 강제합병 당시 종단의 책임을 인정하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참사문을 작성했다. 2005년에는 조동종 안에 인권옹호추진본부를 만들어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봉환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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