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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발 없어도 처벌해야 할 성범죄

중앙일보 2012.09.11 00:01 종합 38면 지면보기
올 들어 흉포한 성폭행 사건이 줄을 잇고, 급기야 7세 여아가 잠자던 집에서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일어나고서야 정부와 정치권이 ‘성범죄 근절 대책’을 마련한다며 나섰다. 정치권은 성인 대상 성범죄의 친고죄 폐지 방안에 오랜만에 여야가 한목소리를 냈고, 여성부는 19세 미만 피해자의 지원 확대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친고죄 폐지에 대해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고, 발표된 대책들이 모두 입법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 시끄러운 시기가 지나가면 흐지부지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범죄와 달리 성범죄는 피해자가 성인이냐 미성년자이냐에 따라 다루는 방법이 다르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는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하지만, 성인 대상 범죄는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친고죄 폐지의 당위성은 오랫동안 주장되어 왔지만 강한 ‘신중론’ 때문에 관철되지 못했다. 법무부 담당자는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 ‘합의를 통해 금전적·정신적 피해 회복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성범죄를 국가가 다스려야 하는 ‘범죄’가 아니라 여전히 개인의 정조 문제로 보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성범죄는 재범률이 매우 높고 치료를 요하는 상습적인 질환성 범죄다. 성범죄자들은 미성년과 성인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며 상습범들을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공익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또 성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 권력관계를 이용해 저질러져 피해자가 신고할 수 없는 경우도 많고,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로부터 유혹과 협박을 당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2차 피해도 빈번하다. 이런 점에서 친고죄 폐지가 오히려 공익에 부합한다. 피해자의 인권보호와 치료는 가해자의 처벌과 별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범죄는 반드시 가혹하게 처벌한다’는 사회적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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