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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2015년 신 한·일 협정’이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2012.09.11 00:00 종합 38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 총국장
“위안부 문제는 인권문제예요. 제대로 배상하고 넘어가야죠.”



 “알아요 알아. 우리 일본이 잘못한 건 알겠는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법적으로 다 마무리된 것 아니오.”



 “아니죠, 위안부 문제가 드러난 건 그 후거든요.”



 “참나, 법적으로 끝난 걸 갖고 자꾸…, 언제까지 그럴 겁니까.”



 지난주 만난 한 일본인 교수와 기자의 대화 한 토막.



 어디 위안부 문제뿐이랴. 독도 문제에 교과서 역사왜곡, 사할린 징용자 배상, 문화재 반환 등 양국 현안은 늘 이런 식이다. 접점이 없다. “끝났다”는 일본과 “끝나지 않았다”는 한국.



 한국은 일본에 원죄와 무성의를 캐묻고, 일본은 그럴 때마다 자신들 입맛에 맞는 법과 조약을 들이민다. 독도에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위안부와 강제징용자 문제 등에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내민다. 그러다 보니 양국 관계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따지면 피하고, 피하면 따지고…. 그때 그때 순간접착제로 봉합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이후 한 달.



 이 대통령은 “(일왕 발언은) 내 진의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일 언론에 흘려 사태 진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 갈등’은 이제부터가 진정한 고비다. 당장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단독 제소하면 양상은 복잡해진다. 일본은 제소 내용을 ICJ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릴 게다. 소장을 전 세계 국가에 돌려 탐독하게 할 것이다. 영국이 포클랜드 섬을 놓고 아르헨티나에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피 끓는 한국이 가만 있을 턱이 없고 가만 있을 수도 없다. 결국 국제사회 전체를 무대로 치열한 외교전, 홍보전이 벌어지게 된다. 한·일 관계는 사실상 올 스톱이다. 미국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일본이 국제사회에 내놓을 제소장의 근간은 51년 5월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가뜩이나 휘발성 강한 대선 정국에서 “미국이 독도를 일본에 넘겼다”는 ‘반미’운동으로 번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대선 후도 마찬가지. ‘당선자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설령 일본이 ICJ에 제소를 않는다 해도 갈등의 근본 치유는 불가능하다. 이대로 가다간 한·미·일 3각 동맹의 프레임은 작동불능, 혹은 습관적 탈골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이쯤 해서 한·일이 ‘새 판’을 짤 때가 됐다. ‘땜빵 처리’는 한계에 달했다. 협정 50년을 맞는 2015년을 목표로 ‘2015년 신(新) 한·일 협정’을 추진할 때다. 위안부·독도·유엔 안보리 문제 등 모든 현안, 관심사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토론하다 보면 과거를 털고 미래를 약속하는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



 러시아의 양심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에서 “과거에 집착하는 이는 한쪽 눈을 잃는다. 과거를 잊는 자는 양쪽 눈을 잃는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가슴에 담을 말이다.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두 눈’ 부릅뜨고 손잡고 갈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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